정부 규제로 잠잠해진 서울 집값이 웬만한 개발 소식엔 다시 들끓지 않을 거라 판단한 것일까?

서울시가 최근 ‘6대 융합 신성장거점’과 강남구 삼성동 현대차그룹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등 대형 개발계획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8월 여의도와 용산 통합 개발 마스터플랜을 보류하겠다고 밝힌 지 6개월여 만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여의도와 용산 통합 개발 마스터플랜을 내놨다. 하지만 일대 집값이 급등하면서 한 달여 만에 박원순 시장이 개발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발을 뺐다. 이후 서울시는 별다른 대형 개발계획을 내놓지 않고, ‘서울시내 8만가구 공공주택 추가 공급에 관한 세부 계획’을 내놓는 등 정부 정책에 발을 맞추는데 그쳤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이런 행보에 변화가 감지된 건 이달 10일 ‘서울시정 4개년(2019~2022)’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원래 박 시장이 3선에 성공한 직후 나왔어야 할 서울시정 마스터플랜인데 부동산 과열 때문에 발표가 미뤄지다 이달 들어서야 공개됐다. 정부 부동산 규제 때문에 더는 부동산이 들썩거릴 가능성이 크지 않은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에는 6대 융합 신성장거점이 언급됐다. △홍릉 △마곡 △구로 G밸리 △상암 DMC △양재・개포 마포 등이다. 특히 지난해 서울 집값 급등의 진앙이 됐던 여의도와 용산 개발계획 등이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서울시는 용산 전자상가 일대에 200억원을 들여 창업거주복합시설을 세우는 Y밸리 사업과 여의도·마포에 블록체인과 핀테크산업 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여의도와 용산 통합개발 마스터플랜 재추진까진 아니더라도 각종 개발계획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이 달라진 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신년사에서도 "좀 더 속도감 있는 추진을 통해 상암과 마곡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홍릉·창동·개포·양재·영동지구 클러스터를 본격화하겠다"고 혁신성장거점 구축을 강조했다.

서울시는 또 삼성동 현대차그룹 신사옥인 GBC 조기 착공도 신속하게 지원하겠다고 했다. 현대차 GBC 착공까지는 △건축허가 △굴토 및 구조심의 △도시관리계획 변경 결정 고시만 남는데, 모두 서울시 인허가 절차다. 서울시는 건축허가 3개월, 굴토와 구조심의 2개월,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 3개월 등 8개월이 소요될 수 있는 인허가 처리 기간을 5개월로 단축해 착공 시기를 앞당길 계획이다.

박원순 시장의 행보가 바뀐 데에는 부동산 급등에 대한 부담이 사라진 게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다주택자와 투자 수요의 추가 주택 구매를 촘촘하게 막는 시장 규제로 서울 부동산이 과열될 가능성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학계와 금융기관, 건설사 등 전문가 100여명을 대상으로 서울 집값 전망을 물은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5%가 1년 뒤 서울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봤다. 한국감정원 KAB부동산연구원이 발표한 올해 주택시장 전망에서도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전년보다 1% 하락하고, 수도권도 0.5% 내릴 것으로 예상됐다.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이 설 연휴 전후로 갖춰지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교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박 시장이 다시 한번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과거 박 시장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여의도·용산 통합개발 마스터플랜 등으로 엇박자를 낸 적이 있는데, 앞으로 국토부와의 협의과정에서 서울시의 목소리를 키우겠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보는 분석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과 보유세, 양도소득세 등 세제 규제로 투자 수요를 옭아맨 상황에서 서울시가 대형 개발소식을 발표한다고 해도 예전만큼 시장이 들끓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다만 서울시도 이미 어느 정도 추진됐던 정책들의 속도는 높이겠지만, 시장을 자극할 만한 새로운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