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신년 인사회'에서 만난 의류 제조업체 대표 A씨는 "창업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올해가 사업을 시작한 이후 가장 두려운 한 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도 공장 가동률이 50%대로 떨어지는 고비를 겪었지만 열심히 옷을 만들면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없다"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의류 회사는 연간 4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우량 중소기업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봉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창업 후 첫 정리 해고를 했다. 20여년간 근무한 숙련공 30명을 내보냈다. A씨는 13일 본지 통화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져 해고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는 것을 직원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를 원망하지 않았다"면서도 "헤어지는 게 아쉬워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한바탕 쏟았다"고 했다.

그는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하는 업체들과 달리 국내에서만 공장을 운영하고 전 직원을 정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다. 장인 정신으로 일하는 숙련공을 키워야 이탈리아 명품 업체 못지않은 기술을 보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가 더 컸다.

그는 올해 적자를 각오하고 있다. 영업이익이 연간 2억원 정도에 그치는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총 4억5000여만원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는 "남은 직원 130여명도 언제 해고될지 몰라 속앓이하고 있다는 얘기를 최근 들었다"며 "직원들은 최저임금 인상 전 임금을 받겠다며 해고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고 했다.

그는 요즘 사방으로 뛰고 있지만 뾰쪽한 대책은 없다고 했다. 최근 의류를 납품하는 대기업을 찾아가 공임을 단 1원만이라도 올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올해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어떻게든 버텨보겠지만 내년에 또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그때는…"이라며 마른침을 삼켰다.

신년 인사회에서 만난 다른 중소기업인들도 비슷한 처지였다. 한 전시물 철거 업체 대표 B씨는 "불황에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직접 철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8만~9만원이었던 인부들 일당이 지금은 15만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인부들은 20일 정도 일해서 월 300만원을 가져가지만 나는 각종 운영비에 세금 내고 나면 가져가는 돈이 월 150만~200만원"이라며 "차라리 사업체 접고 인부로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중소기업이 인건비 부담에 허덕이면서 장기 성장 여력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13일 내놓은 '중소기업 R&D(연구·개발) 투자 현황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 1개사(社)당 평균 연구·개발비는 2007년 6억3000만원에서 2017년 3억4000만원으로 46%나 감소했다. 중소기업연구원 노민선 연구위원은 "경기 악화로 매출이 줄고 인건비가 늘면서 경영 환경이 나빠지다 보니 기업들이 R&D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로 인해 중소기업의 역동성도 사라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발표한 '2018년 중소기업 위상 지표'에 따르면 중소기업 직원들의 연령대 비중을 분석한 결과 20대 직원은 2011년 12.8%에서 2017년엔 8.2%로 줄었다. 30대 직원도 같은 기간 30.7%에서 25.5%로 감소했다. 반면 50대 직원은 17.9%에서 24%로, 60대 직원은 3.5%에서 5.1%로 증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이 연구·개발 대신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살아남으려 하고 있다"면서 "대기업의 성장도 정체되면서 결국 대기업과 전후방으로 연결된 중소기업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