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인 CES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미국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은 그 바깥에 야외 부스를 차렸다. 부스 이름은 구글의 인공지능 음성비서 호출명인 '헤이 구글'. 1672㎡(약 500평) 규모의 전시장에 들어서자 구글의 인공지능을 탑재한 LG전자 사운드바, 뱅앤올룹슨 스피커, 월풀 오븐 등 100종 이상의 제품이 빽빽하게 전시돼 있었다.

세계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 1위인 아마존은 대형 부스 없이 라스베이거스 시내 곳곳에 소규모 부스를 여럿 차리는 분산 전략을 택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포진한 컨벤션센터에는 중소기업 수준의 작은 '아마존 알렉사 자동차' 부스를 차렸다. 여기서 2.5㎞ 떨어진 베네시안호텔 '아마존 알렉사' 전시장에는 자사 인공지능을 탑재한 제휴 기업 제품 100여 종을 전시했는데 지도를 보고 찾아온 관람객들로 입구부터 붐볐다.

◇인공지능으로 CES 장악한 구글·아마존

전 세계 주요 기업의 CEO(최고경영자)부터 핵심 임원까지 총출동한 CES에서 구글·아마존은 여느 기업과는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두 회사의 CEO가 불참한 것은 물론 다른 글로벌 기업처럼 컨벤션센터 내에 대형 부스를 마련하지도 않았다. 구글은 전시장에 롤러코스터를 설치하고 아마존은 전시장 곳곳에서 바나나를 무료로 나눠주는 색다른 모습을 보였다.

외신들은 그러나 "구글과 아마존이 이번 CES의 주인공"이라고 평가했다. CES에 참가한 거의 모든 기업이 자사 제품에 구글과 아마존의 인공지능을 탑재했다. 실제로 삼성·LG, 샤프·파나소닉(일본), 하이얼·창홍(중국) 등 전 세계 주요 가전 기업의 전시 부스에는 어김없이 '아마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등 두 회사의 인공지능 홍보 문구가 붙어 있었다.

게다가 구글은 CES 개막 전날인 7일 "구글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기 판매량이 이달 말 10억대를 넘어설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작년 5월 5억대였던 판매 기록이 8개월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넘어서 전 세계 1600개 기업의 가전 1만종에 구글 인공지능을 탑재한 것이다. 반면 아마존은 알렉사를 탑재한 제품의 누적 판매는 1억대 수준이지만 제휴 범위는 구글의 2배다. 현재 전 세계 3500개 기업, 2만종 이상의 제품에 아마존의 알렉사를 탑재하고 있다.

◇다음 경쟁 무대는 자동차

아마존과 구글은 이번 CES에서 부스 입구에 일제히 차(車)를 전시하며 다음 경쟁 무대는 자율주행차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차에서 음성명령으로 집 안의 모든 가전을 조종하고 반대로 집에서도 "차 시동 걸어줘"라는 식으로 자동차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아마존은 이번 전시회에서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한 이용자가 음성을 통해 자율주행차에 다양한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시연했다. 자동차가 알아서 가까운 카풀 요청을 수행해 돈을 벌고, 가까운 상점에서 식료품을 받아오고, 배터리가 떨어지면 전기차 충전소를 찾아가 충전하는 식이다. 이번 CES에서 구글은 자사와 협업한 미국 포드 차량을, 아마존은 독일 BMW·아우디와 중국 전기차 업체 바이튼의 차량을 전시했다.

독자적인 인공지능 음성비서를 보유한 삼성전자(빅스비)와 LG전자(씽큐)도 이번 CES에서 일제히 구글·아마존과의 인공지능 협력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독자적인 인공지능은 유지하되, 이용자 편의를 위해 구글·아마존의 인공지능 탑재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CES에 참가한 한 IT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구글에 운영 체제(OS)를 내주며 주도권을 뺏겼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양사가 경쟁사와 협력도 하면서 독자 생존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