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측정을 하듯 가볍게 숨만 쉬면 암을 진단할 수 있는 분석 기기가 개발됐다. 향후 이 진단 기기가 임상 시험을 거쳐 상용화되면 환자의 고통 없이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암연구소는 "호흡만으로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분석기를 개발해 환자 1500명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시작한다"고 지난 3일(현지 시각) 밝혔다. 세계 최초로 몸에 손상을 주지 않는 비(非)침습 기술을 통해 암을 진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기존에는 암 발생 여부를 진단하기 위해 혈액 검사, 조직 검사처럼 환자 몸에 주삿바늘을 찌르거나, 몸 일부를 절개해야 했다.

세포는 대사 과정에서 생화학반응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휘발성 유기 분자들을 만든다. 만약 암이나 여러 다른 조건에 의해 대사 과정이 바뀌면 다른 형태의 휘발성 유기 분자들을 방출한다. 영국 업체 올스톤 메디컬이 개발한 진단 기기는 이러한 유기 분자의 변화 형태를 감지한다.

암세포에서 나오는 일종의 폐기물인 휘발성 유기물질은 혈관을 통해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폐에서 호흡을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환자가 진단 기기를 코와 입에 댄 채 10분 정도 호흡하면 폐에서 나오는 공기 분자들이 기기 내 마이크로칩에 모인다. 이 칩을 연구실에서 분석하면 암세포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기물질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올스톤 메디컬 공동 창업자인 빌리 보일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보좌했던 아내 케이트 그로스가 2014년 36세에 대장암으로 사망하자 암 조기 진단 기술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레베카 피츠제럴드 암연구소 교수는 "임상 시험은 식도, 위암 의심 환자부터 시작해 장차 전립선암·간암·췌장암 환자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식도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바렛 식도 환자가 대표적이다. 위산 역류에 의해 식도 내피 세포들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 병이다. 영국에서는 환자 100명 중 13명이 식도암에 걸린다. 이번 임상 시험이 성공하면 불편한 내시경 검사를 간단한 호흡 검사로 대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