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장 그랜저, 상무 제네시스'.

올해부터 SK그룹에서는 이른바 '차량 계급 역전'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는 '상무 그랜저, 전무 제네시스'가 공식이었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회사 차량은 임원 직급의 상징이기도 했다.

SK그룹은 이런 공식을 깨고 임원이 직급별 포인트를 활용해 스스로 차량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걸어서 출퇴근하거나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임원은 차량 대신 현금을 받을 수도 있다. 또 CEO(최고경영자) 등을 제외하고는 '전담 기사제도'를 폐지한다. 필요할 때마다 운전기사 지원을 요청하는 '공용 기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SK그룹 측은 "지나치게 위계를 강조하는 한국식 기업 문화를 탈피하고 수평적 조직 문화 확산과 일하는 방식 혁신을 위해 임원 제도 혁신에 나서고 있다"고 8일 밝혔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회에서 "지위가 올라갈수록 자리, 권위를 생각하는데 그렇게 꼰대가 되면 성숙도가 떨어진다"며 "임원부터 꼰대가 되지 말고 희생해야 행복한 공동체가 된다"고 강조했다.

SK텔레콤은 이달 말부터 임원 사무실 크기를 통일하기로 했다. 사장을 제외한 부사장, 전무, 상무 등 임원은 직급과 무관하게 동일한 크기의 집무실로 옮긴다. 넓이 또한 기존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여 공간 효율성도 높인다.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이미 사업보고서 등에 임원 명칭을 상무, 전무 등의 직급이 아닌 실장, 본부장 등 직책으로 표기하고 있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러한 혁신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CEO를 제외한 모든 임원의 직위를 통합하고, 연공서열에 관계없이 성과·역량을 기반으로 인사 평가를 하겠다는 전략"이라며 "그동안 상무, 전무, 부사장 등 계단식으로 승진했다면 앞으로는 임원 선임, CEO 선임 구분만 두고 조직 필요에 따라 처우를 그때그때 다르게 하는 식으로 인사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임원제도 혁신은 격변하는 글로벌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도 올 1월부터 차장·부장 등 중간 관리자와 상무 등 임원을 '간부'로 통폐합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