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파악 위해 총 1년간 매일 가계부 작성 요구
6개월내 포기 37.3%…금융·사업소득 파악 안돼

"결국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조사가 부활한 게 문제가 된 겁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소득조사를 되살리면서 말썽이 생긴 것이죠."

지난 7일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 불응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하루 만에 철회한 것에 대해 가계동향조사에 정통한 전문가 A씨는 이같이 말했다. 가계동향조사는 소득조사와 지출조사로 나뉘는데, 조사방식이 논란이 되자 정부는 올해부터 표본을 새로 해 시행할 예정이었다.

통계청은 당초 가계동향조사 수행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경우에 한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조치"라고 지적하자 반나절 만에 강신욱 통계청장이 세종 정부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과태료 부과 방침을 철회했다.

가계동향조사 표본가구로 선정되면 12개월간 매일 가계부를 작성하고 신용카드 사용 영수증을 정리해야 한다. 6개월 쓰고, 6개월 쉬고, 다시 6개월을 쓰는 방식이다. 표본가구로 선정된 한 가구주는 "퇴근하고 (가계부를) 작성하는 데 보통 한 시간 이상이 걸렸고, 무조건 써야하고 정확하게 안 쓰면 과태료 대상이라고 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강신욱 청장도 7일 기자회견에서 "소득부문 조사를 함께 실시하면서 가계부 작성 기간이 길어지고, 가계 부담이 크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가계부로 가구 소득과 지출을 함께 조사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들은 지출만 조사한다. 이들 나라는 소득이나 자동차 등 내구재 지출은 설문조사로 파악하고, 가계부 작성은 2주 정도만 요구한다. 식료품 등 비내구재와 준내구재 소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목적이다. 가계 지출 양상을 파악하는 게 목적이어서 소득과 지출을 오랫동안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계부 작성에 불응하는 가구 비율도 높다. 가계동향조사 응답률은 2010년 80.6%였는데 2015년 75.4%, 2017년 72.5%로 하락했다. 고소득층 및 저소득층 가구가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가 2018년 12월 발표한 ‘한국의 소득불평등 현황과 쟁점’ 논문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지역의 응답률은 50%에 불과하다. 또 조사 시작 이후 6개월 내에 가계부 작성을 포기한 가계가 37.3%에 달했다.

가계소득도 정확히 파악되지 못한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가 2016년 가계동향조사와 국세청 자료를 비교한 결과 금융소득 파악률은 3.6%에 불과했다. 근로소득 파악률도 77.2%에 그쳤다. 김 교수는 "고소득층은 본인들의 벌이를 밝히기 꺼릴 뿐만 아니라, 금융소득도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제대로 이야기를 안한다"고 했다. 그는 "사업소득도 응답자가 본인 형편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섣불리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가계부 작성 방식으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조사 대상 가구에 요구하는 게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김낙년 교수는 "월간 또는 계간으로 속보성 소득 통계가 필요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확보해도 된다"며 "미국의 경우 한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와 비슷한 CPS(Current Population Survey)에서 월 단위로 사업체별 근로자수와 임금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소득 추이를 파악한다"고 했다.

가계동향조사 표본가구에 지급하는 대가도 넉넉하지 않다. 조사에 응한 대가로 지급하는 가구당 답례품 비용은 2016년 월 5만원, 2019년 월 6만5000원이다. 조사에 참여하는 총 12개월 간 받는 대가를 모두 합치면 78만원(월 6만5000원×6개월×2회)에 불과하다. 김영원 숙명여대 교수는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답례품 비용을 증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장조사원이 과도한 부담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 현장조사원은 2017년 850명에서 2018년 1000명으로 늘었는데,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계약직들이다. 김경란 전국통계청노동조합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급여를 쪼개 월 15만원 가량을 조사 구역 관리에 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장조사원은 이사, 청소 등을 도와주는 등 조사 대상 가구의 허드렛일을 맡아서 하는 경우도 잦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