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의 블록체인(분산 저장 기술) 플랫폼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다. 글로벌 선사들이 블록체인을 도입해 물류·운송 과정을 총괄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변신, 해운에서 물류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8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블록체인 확산과 해운‧물류분야의 대응’ 보고서에서 해운‧물류 분야 블록체인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업계에서는 블록체인이 가시성(Visibility·운송 화물 위치 파악) 확보, 글로벌 공급망 관리, 거래 신뢰성 제고 등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를 기록하고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이다.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에게 정보를 분산해 보관⋅유지하기 때문에 중앙 관리나 통제 없이 정보를 확인하고 인증할 수 있다. 참여자 합의로 거래 데이터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분산원장 기술이 사용돼 계약 참가자간 신뢰성도 담보된다.

해운업계는 블록체인 도입으로 비용 절감 등의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동아프리카에서 유럽 간 해상무역으로 물품을 운송할 경우 30개 이상 개인‧기관이 200번 이상 거래에 참여하고, 상품 출하를 위한 문서처리만 10일이 소요된다. 월드이코노믹포럼에 따르면 해운‧물류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비효율성이 사라져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가 4.7%(2조6000억달러)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선사는 블록체인 도입으로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화물 예약부터 운송까지 통제할 수 있게 돼 화주에게 운송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다. 플랫폼이 한번 채택되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장 형성기에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 플랫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선사간 합종연횡도 일어나고 있다.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는 지난해 9월 IBM과 함께 글로벌 무역 블록체인 플랫폼을 위한 ‘트레이드렌즈(TradeLens)'를 설립했다. 트레이드렌즈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는 싱가포르항만공사(PSA) 등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사, 네덜란드‧사우디아라비아‧호주 등 세관을 포함해 94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 CMA‧CGM, 중국 COSCO, 대만 에버그린 등 오션 얼라이언스에 참여한 선사들은 머스크가 주도하는 트레이드렌즈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글로벌 쉬핑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컨테이너 운영사인 DP월드, 허치슨포트, 상하이국제항무집단(SIPG) 등이 손을 잡았다. 대형 선사와 대형 터미널 운영사들이 힘을 합친 것이다.

국내에서도 삼성SDS 등 IT기업과 현대상선‧SM상선 등 선사들이 참여하는 해운‧물류 블록체인 컨소시엄이 결성돼 운영 중이다. 2017년 하반기 기술 검증 시범운항까지 마친 상태다. 하지만 컨테이너 선사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는 해운‧물류 블록체인 시스템에서 국내 선사의 역량만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희성 KMI 해운빅데이터연구센터장은 "국내 IT 기업, 항만 운영사, 금융사가 중심이 된 컨소시엄에 국내외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블록체인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유리한 시스템에 가입해 실익을 챙기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