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봉 9100만원의 KB국민은행 노조가 석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보너스(시간외 수당 포함)를 요구하며 사측과 협상에 임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통상임금 300%에 해당하는 총액은 2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또 일정 기간 승진을 하지 못하면 임금 상승을 막는 '페이밴드' 폐지 요구, 임금피크제 적용 시기 1년 유예 등도 함께 요구했다.

7일 파업 안내문이 붙은 서울 시내 KB국민은행 지점에 고객이 들어서고 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성과급 300% 지급, 임금피크제 연한 1년 연장, 점심시간 PC오프제 1시간 의무화, 장기간 무진급자 기본급 동결 등을 요구하며 8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조의 요구 상당수는 국민은행이 작년 사상 최대 순이익을 냈으니 이를 나누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적을 이끌어 낸 주역은 국민은행 직원이 아니라 '금리'라는 게 중론이다. 대출금리가 오르며 이자 수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은행 직원만의 이익을 위해 3000만 명에 이르는 고객을 볼모로 총파업 엄포를 놓는 게 온당하냐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호실적이 은행원 성과인가?

국민은행은 작년 1~3분기에만 2조원 넘는 순이익을 올렸다. 2017년 1~3분기와 비교해 순익이 약 13% 증가했다. 하지만 가파르게 이익을 끌어올린 일등공신은 이자다. 이 기간 순이자이익만 4조5000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시장에서 대출금리는 빠르게 오른 반면, 예금금리는 천천히 올라 예대금리 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 차이)가 확대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본다. 은행 내부의 혁신적인 기술이나 수익 모델이 생긴 게 아니라, 금리가 올라 소비자들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더 비싼 이자를 치르게 되면서 수익이 늘었다는 뜻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쉽게 번 돈으로 직원 '돈 잔치'를 벌이겠다며 금융 소비자를 볼모로 잡지 말고 금융 약자 보호, 서민 금융 지원 등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내부 경쟁 싫다고 하는 것"

성과급뿐 아니라 국민은행 노조 주장 곳곳에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이자 장사를 하며 편안하게 영업해 온 은행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녹아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표적인 것이 '페이밴드(payband)' 거부다. 국민은행은 연차가 쌓이면 그에 비례해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페이밴드는 연차가 쌓여도 직급 승진을 못 하면 임금 인상을 제한하는 제도다. 이미 신한·하나·우리 등 주요 은행은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KB는 2014년 말 이후 입사한 직원 1000여 명에게만 적용하고 있다. 내부 경쟁을 통해 성과를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 향후 이 제도를 확대한다는 게 사측 주장이다. 반면 노조는 "신입사원에 대한 차별"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호봉제 부작용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승진을 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연봉이 오르다 보니 승진을 하지 못한 채 만년 대리에 머물고 있는 20년 차 직원이 열심히 실적을 쌓아 승진한 입사 15년 안팎 된 과장보다 연봉이 2000만원가량 높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사측 관계자는 "열심히 일해 빨리 승진한 후배 과장이 자기보다 연봉 높은 고참 대리를 보면서 일할 맛이 나겠나"라고 했다. 국민은행은 최대 경쟁자 신한은행과 비교할 때 1인당 생산성도 낮다. 국민은행 1인당 생산성(충당금 적립 전 이익 기준)은 1억7400만원, 신한은행은 1억9600만원으로 13% 가까이 차이가 난다. 또 임금피크제 적용이 시작되는 시기를 1년 더 미뤄달라는 요구는 점진적인 구조조정을 거부한 채 연봉을 더 챙겨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온다.

KB 경영진, 노조에 또 굴복하나?

이날 은행 경영진은 노조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사측은 성과급과 시간외 수당으로 통상임금의 250% 수준을 제안하면서 300%를 요구하던 노조와 맞섰다. 하지만 이날 오후 허인 국민은행장은 "페이밴드 논의를 시작하고 임금피크제 적용 시기에 대한 조정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성과급과 수당 등으로 통상임금 300%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은 임직원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주주와 고객들이 있다"면서 "노사가 대의와 명분을 생각해 성과급 인상분 일부를 장기연체한 취약계층의 대출금을 없애주거나 사회공헌기금을 더 늘리는 데 쓴다고 했으면 국민은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처럼 싸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