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서울시가 자영업자를 돕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신용카드 수수료를 낮춰주기로 한 제로페이가 시행된 지 보름이 됐지만 소비자 반응은 냉랭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본지가 제로페이가 시행된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4일까지 4대 시중은행 앱을 통해 이뤄진 결제 건수를 집계한 결과, 전체 결제 건수는 1607건이었다. 공무원과 은행 직원 등 담당자들이 시험 삼아 써본 사례가 많은 첫날(210건)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고작 93건의 결제가 이뤄진 셈이다. 제로페이를 통해 자영업자가 절감한 수수료를 모두 모아도(신용카드 수수료 1.4%, 평균 결제액 5만1600원 기준) 약 116만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예산 29억원을 투입, 1000명을 목표로 선발 중인 '제로페이 서포터즈'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인건비 약 290만원(일당 5만 8000원×40일(총 활동 기간)+4대 보험료 등)에 크게 못 미친다.

신한·비씨·롯데카드 3사가 7일부터 ‘QR 스캔 결제’ 서비스를 시작한다. 소비자는 신용카드나 현금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매장에 인쇄된 QR 코드를 스캔하는 방식으로 결제할 수 있다.

제로페이를 설치한 종로구 한 식당 주인은 "지금까지 제로페이를 쓰려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며 "손님 입장에선 신용카드 꺼내서 내기만 하면 끝인데 굳이 왜 휴대폰 열어서 고생스럽게 결제를 하겠나"라고 했다. 홍준표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의 경우 카드 중심 결제 시장이 오래가고 있고,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며 "이를 대체하려면 카드를 능가하는 혜택·편의성을 제공해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이용한 앱투앱 결제는 이런 점에서 더 우수한 방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흥행 부진인데 카드사들도 'QR 결제'

이처럼 서울시가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제로페이가 흥행 부진을 겪는 와중에, 국내 신용카드사들이 중국·인도 등에서나 보편화돼 있는 'QR 결제'에 뛰어들었다. QR 결제란 휴대폰으로 고유 정보가 담긴 격자무늬 코드(QR 코드)를 찍으면 결제 대금이 고객 계좌에서 점주 계좌로 이체되는 서비스다. 마그네틱보안전송 방식의 삼성페이, 바코드·근거리무선통신(NFC) 방식의 페이코 등과 함께 간편결제의 일종이다.

신한·비씨·롯데카드가 통합 QR 결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6일 밝혔다. 4300만 카카오톡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카카오페이, 서울시가 자영업자를 돕겠다며 만든 제로페이, 한국은행이 시중은행들과 함께 올 상반기 도입하는 예금계좌 연계 모바일 페이에 이은 또 하나의 QR 결제 서비스다. 카드사들은 QR 결제를 만든 이유로 또 '자영업자 수수료 경감'을 내세웠다. 하지만 휴대폰을 열고 앱을 구동해 가게에 있는 QR 코드를 찍고, 때로는 결제 금액까지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운 결제 방식이 과연 얼마나 소비자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소비자 입장에선 별 장점이 없는데도 QR 페이가 간편결제 시장의 '대세'가 된 배경엔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2017년 말 중국 베이징 방문 때 대사관 직원이 테이블 위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밥값 68위안을 결제하는 모습을 본 문 대통령이 "이걸로 다 되냐"며 놀라는 모습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후 지난해 8월엔 한 핀테크 행사에 참석해 800원짜리 음료수를 QR 코드로 결제하기도 했다. QR 페이는 어느새 현 정부의 '규제 혁신 아이콘' 반열에 올랐다.

◇소비자들에겐 장점 없는 'QR 결제'

3개 카드사들의 QR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맹점은 결제 수수료 0.13~ 0.14%를 할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굳이 QR 결제를 써야 할 이유가 안 보인다. 신용카드는 카드를 꺼내 긁는 데 약 10초면 끝인데, QR 결제를 쓰려면 휴대폰을 구동하고, 앱을 찾아 열고, QR 코드를 찍고 결제 비밀번호나 지문·안면 인식으로 결제를 승인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결제 금액을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앱에 입력해야 한다.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소비자라도 20초 정도는 걸리고, 그렇지 않다면 몇 분까지도 잡아먹을 수 있다. QR 결제 확산에 '물음표'가 달리는 이유다. 이런 점을 우려한 비씨카드는 2월 말까지 QR 페이를 쓰는 고객에게 건당 500원(하루 최대 1500원)의 청구할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

☞간편결제와 QR 결제

신용카드 번호나 은행 계좌번호 등을 모바일 기기 등에 미리 저장해 두고, 거래 시 간단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단말기 등을 접촉해 결제하는 서비스. 휴대폰으로 고유 정보가 담긴 격자무늬 코드(QR 코드)를 찍는 방식이 QR 결제이며 이 외에 NFC(근거리무선통신) 방식, MST(마그네틱보안전송) 방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