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전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 북쪽 해안가. 축구장 3개 면적 땅을 10m 깊이로 파내고 바닷물을 가득 채운 독(dock·선박 등 물에 뜨는 대형 시설·장비의 건조장) 안에 무게 5만t짜리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두 개가 배처럼 떠 있었다. 구조물 위에서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 200여 명이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작업자들은 '케이슨'이라 불리는 이 구조물을 바다로 끌고 나가 가라앉혀 현수교의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로 쓸 예정이다. 그 위에 63빌딩(274m)보다 높은 318m짜리 주탑(기둥)이 주춧돌 위에 하나씩 세워진다. 주탑 사이를 강철 케이블로 연결한 뒤 다리를 매달면, 대림산업과 SK건설이 터키 정부로부터 공동으로 수주한 세계 최장(最長)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가 완성된다.

한·일 정부도 수주전 지원한 큰 사업

터키 공화국 수립 100주년(2023년)을 앞두고 진행되는 차나칼레 프로젝트는 길이 4.6㎞(주탑 간 거리 2㎞)의 세계 최장 현수교와 약 100㎞의 진입 도로를 건설하는 3조2000억원짜리 초대형 공사다.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차나칼레 대교 완공 예상도. 총 연장 4600m, 주탑과 주탑 간 거리 2023m인 세계 최장 현수교다.

대림산업과 SK건설은 2017년 3월 벌어진 현수교 수주전에서 현지 건설사 2곳과 컨소시엄을 이뤄, IHI·이토추상사 등 일본 기업 컨소시엄을 제치고 사업을 따냈다.

당시 수주전은 한·일 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사실상 국가 간 대결 양상으로 치러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이 사업을 직접 거론할 정도였다.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든다"

대림·SK 컨소시엄은 국내 최장 현수교인 이순신대교(1545m)를 함께 만든 경험이 있다. 양사는 이순신대교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역전(歷戰)의 용사'를 대거 다시 투입했다. 김권수 SK건설 실장은 "설계·공사·공무 등 담당자 하나하나가 다른 현장에서는 총책임자급 역할을 맡았던 '드림팀'"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0m가 넘는 이번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도전이다. 정봉교 대림산업 엔지니어는 "단순히 길이를 33% 늘리는 게 아니라 '과거 사례가 전무한 작업'의 연속이라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차나칼레 대교를 들어 올리는 강철 케이블은 강도(强度)가 역대 최고 수준인 1960메가파스칼. 한국 고려제강이 생산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실전에 사용된 적이 없는 제품이다.

정 엔지니어는 "튼튼하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투입량을 기존 제품 대비 얼마나 줄여도 되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다"며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기업 유연성, '시간 싸움'에 빛나다

컨소시엄은 시간과도 싸우고 있다. 터키 정부는 1923년 차나칼레 해협에서 프랑스·영국 연합군을 격파한 '전승(戰勝) 99주년'인 2022년 이 다리를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호언장담한 상황이다. 건설사 입장에서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한국 기업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고 현지 관계자는 말한다. 터키 건설사 리막(Limak) 소속으로 과거 일본 기업 컨소시엄에서도 일했던 알페르(Alper) 알렘다로루 부(副)프로젝트 매니저는 "한국 기업의 강점은 유연성"이라며 "컨소시엄 내에 이견이 발생할 경우, 한국 기업은 합의에 이를 때까지 현장을 스톱시키는 게 아니라 합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견이 없는 공정을 먼저 찾아내 진행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일정 기간 도로·교량 운영권을 줘 통행료 수익으로 건설비를 회수하는 'BOT(Build-Operate-Transfer· 건설-운영-양도)' 방식이다. 그러나 터키 정부가 하루에 4만5000대분(分) 통행료를 보장해 손실 위험이 적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이 저유가에 따른 글로벌 플랜트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건설업계에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차나칼레 대교는 터키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발주됐지만, 동시에 결과적으로 한국 건설사의 토목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하는 상징물이 될 것"이라며 "향후 해외 인프라 건설 시장 진출에도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