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투브 영상과 인터넷 게시글 등을 통해 폭로하고 있는 ‘적자국채 4조원 추가발행’ 압력의 본질은 초과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과 맞닿아 있다.

지난 2017년 국세수입은 전년대비 22조8000억원 늘어난 265조4000억원으로, 2017년 예산안 편성당시 예측보다 23조1000억원 더 들어왔다. 2017년 10조원 규모 추경 재원으로 초과세수를 활용했지만, 최종적으로 세수는 14조원 가량 예상을 초과했다.

초과세수가 들어온만큼 적자국채를 줄이는 게 당연하지만, 청와대를 의식한 김동연 전 부총리 등 고위층이 이 원칙을 묵살했다는 게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다.

◇초과세수 늘어나자 국고채 바이백 축소 주장 나와

초과세수가 발생할 경우, 적자국채를 줄이는 게 일반적인 재정운용원칙이다. 초과세수를 활용해 채권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국고채를 정부가 매입(바이백)하면 국고채를 조기상환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적자국채가 줄어들면서 정부의 이자비용도 감축된다.

‘2017년 11월 기준 적자성 국채 8조7000억원을 발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바이백 확대 등을 통해 적자성 국채를 최소화하는 내용을 의미한다고 기재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바이백 규모를 늘리게되면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게 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 전 사무관도 자신의 글에서 "기존 국가채무의 차환이란 국채는 발행하되 조달된 자금을 재정지출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2018, 2019년 만기 도래 국채를 조기에 상환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기재부는 2017년 7월부터 매월 3조원 규모의 국고채 바이백을 실시했었다. 7~10월 사이 바이백한 국고채가 10조원에 이른다. 연초부터 발생한 초과세수로 적극적으로 적자국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논란은 연말을 앞둔 11월 초과세수 활용을 둘러싸고 기재부 내부에서 다른 계산이 나온 것에서 시작됐다. 당시는 28조7000억원에 이르는 연간 적자국채 발행 한도 중 20조원을 발행하고 8조7000억원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경제정책라인에서 바이백 규모를 줄이고 남는 세수를 세계잉여금으로 넘기자는 의견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백을 줄여서 적자국채 발행한도를 최대한 소진하자는 주장이다. 초과세수를 세계잉여금으로 남기면 다음년도 추경 재원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신 전 사무관이 소속된 국고국과 재정정책라인에서는 바이백 등을 통해 8조7000억원에 이르는 적자국채 한도를 소진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 靑 의식한 김동연 "적자국채 늘려라"…재정차관보 "국가채무비율 덜 떨어뜨려라"

신 전 사무관은 김 부총리가 청와대를 의식한 정무적 판단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김동연 전 부총리는 "정권이 교체된 2017년도에 GDP(국내총생산)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면 향후 정권이 지속되는 내내 부담이 가기에 국채발행을 줄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또 "적자성 국채를 최대한 발행하는 방향으로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신 전 사무관은 주장했다.

고려대학교 고파스 캡처

김 부총리의 지시 이후 재정정책라인은 상환할 수 있는 적자성 국채를 덜 갚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 전 사무관은 "적자성 국채를 4조원 이상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 전 사무관의 보고선은 ‘국고과장 →박성동 국고국장 →조규홍 재정관리관(차관보)’였다. 신 전 사무관이 공개한 카카오톡 화면 사진에서 "핵심은 17년 국가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시한 차관보는 바로 조규홍 전 재정관리관이다. 그는 현재 영국 런던에 위치한 EBRD(유럽부흥개발은행) 이사로 파견 근무 중이다.

당초 계획했던 적자국채 최소화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당초 공지된 11월 15일 국고채 조기상환이 예고 없이 취소됐다. 이상규 당시 국채과장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초과 세수 문제에 대해 큰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고 국채 발행이나 바이백 물량, 시기 조절 등은 그 한 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자국채 발행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라’는 김 전 부총리의 지시는 결과적으로 철회됐다.

신 전 사무관이 쓴 글에 따르면, 박성동 국장 주도로 김 전 부총리에게 "추가 발행이 어렵다"라는 보고를 했고, 김 전 부총리는 "정말 발행하지 않는 것이 낫겠냐"고 되물은 뒤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 바이백 후폭풍에 김동연 적자국채 발행 지시 철회

실제로 국고채 바이백은 11월 15일 한 차례만 취소됐고, 같은 달 22일에는 예정됐던 1조원 바이백이 계획대로 진행됐다. 12월에도 5000억원의 국고채 바이백이 실시됐다. 그해 12월에는 월 평균 6조원 이상이었던 국고채 발행규모도 4조원 규모로 줄었다. 당초 국고국 등이 계획한대로 적자국채를 추가적으로 늘리지 않았다.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정부는 국고채를 전년대비 46조5000억원 감소한 93조원 발행했다. 세수호조로 지난해 7월 이후부터 월간 3조원 이상씩 국고채를 조기상환하면서 연간 발행액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국고채 발행잔액은 617조1000억원으로 전년대비 3조원 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바이백 취소가 일어났던 2017년 11월 15일 전후 국채 금리 추이.

김 부총리가 생각을 바꾼 이유는 시장의 후폭풍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기재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 부총리는 11월 15일 바이백 취소로 인한 국채금리 급락에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당시 국고채 3년과 5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각각 3.4bp(1bp=0.01%p)와 3.7bp 하락(가격급등)한 2.177%와 2.380%에 거래됐다. 당시 일 평균 거래 변동폭이 0.03bp 내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바이백으로 인한 시장충격이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당시 김 부총리가 바이백 취소로 시장이 요동치는 것을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전했다.

신 전 사무관이 쓴 글에 따르면, 김 부총리는 "난 분명히 조기상환 취소하라고 한적 없다. 내가 시장 흔드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시장에 공표했다는 거 알았으면 난 절대 못하게 했을 거다. 내가 그날 좀 세게 말해서 알아서들 조정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 그럴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