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는 자율주행차 개발이 한창이다. 앞선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자율주행차가 만들 금맥을 찾아 속속 모여들고 있다. 세계 자율주행차 시장은 2025년 420억달러(약 47조원)에 이를 전망. 실리콘밸리를 찾아 치열한 자율주행차 개발현장을 취재했다.

지난 11월 30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외곽에 위치한 소도시 벌링게임. 공항에서 차로 약 20분을 달려 벌링게임에 있는 목적지 ‘팬텀(Phantom) AI’에 도착했다. 팬텀 AI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엔지니어인 조형기 대표와 이찬규 대표가 의기투합해 2016년 설립한 자율주행 기술개발 스타트업이다.

팬텀 AI는 주변에 바다와 도로, 몇 채의 주택들만 보이는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어 밖에서 보기에는 첨단 자율주행 기술 연구가 진행되는 곳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무실 내부로 들어서자 비로소 익숙하게 봐 왔던 스타트업의 모습이 펼쳐졌다. 내부의 큼직한 홀에는 여러 대의 장비와 센서를 탑재한 자동차들이 있었고 엔지니어들은 컴퓨터를 사이에 두고 분주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도로의 전방 신호와 속도, 장애물, 주변 상황 등을 인식하는 센서를 통해 수집된 정보가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인 팬텀 AI를 이끄는 사람들. 앞줄 왼쪽에서 첫번째가 이찬규 박사, 두번째가 조형기 박사다.

"자동차 기술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업체 같죠? 이제 그동안 축적한 자율주행 기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건물 밖으로 이동한 뒤 엔지니어와 함께 자율주행차로 개조된 팬텀 AI의 제네시스 차량에 탑승했다. 시동을 건 뒤 목적지를 입력하자 제네시스는 주차장을 빠져나가 익숙하게 2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탑승자 모두가 주행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가운데 제네시스는 안정적으로 제 차선과 속도를 유지한 채 도로를 달렸다.

교차로에 들어서자 제네시스는 스스로 우측 방향등을 켠 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도로에 합류했다. 교통신호가 없는 도로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인식해 멈추는가 하면 옆 차선의 차량이 추월을 시도하자 슬그머니 속도를 줄여주기도 했다.

팬텀 AI가 개조한 제네시스는 주변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는 4차선 도로를 빠져나와 스스로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주차장의 빈 자리로 들어오며 시범 주행을 마쳤다. 약 15분간 이어진 주행에서 스티어링휠에 손을 댄 탑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주행하는 자동차 기술은 자율주행 4단계에 해당된다. 조형기 대표는 "4단계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했지만, 규제와 사고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 시장에 도입하기까지 3~4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며 "현재는 양산 가능한 기술의 상용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팬텀 AI는 2단계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비전 솔루션(vision solution)’ 기술을 확보해 출시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비전 솔루션이란 카메라와 라이다, 센서 등 자율주행차의 ‘눈’에 해당하는 각종 장비를 통해 수집된 영상정보로 알고리즘을 형성해 차가 스스로 주행에 필요한 판단을 하도록 ‘뇌’를 만드는 기술이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토대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의 하나로 분류된다.

팬텀 AI가 설립 2년여만에 비전 솔루션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곳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조형기 대표는 카네기멜론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테슬라에서 자율주행기술인 오토파일럿 연구를 담당했다. UC 버클리 박사 출신인 이찬규 대표는 현대자동차에서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을 개발했다. 다른 20여명의 엔지니어들 역시 대부분 컴퓨터공학과 로보틱스 등을 전공하고 비전 솔루션 기술 연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팬텀 AI의 엔지니어가 비전솔루션 기술을 테스트하고 있다.

현재 비전 솔루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이스라엘의 자율주행 기술업체 모빌아이로 전체 시장의 약 90%를 점유하고 있다. TRW와 마그나, 발레오 등 글로벌 자동차 부품·전장업체들이 비전 솔루션 기술을 개발하려고 나섰지만, 모빌아이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는데 실패했다. 만도등 국내 기업들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규 대표는 "비전 솔루션은 고도의 AI 기술 경쟁력이 필요한 분야라 단순히 많은 자본과 인력을 갖췄다고 해서 쉽사리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라며 "모빌아이의 기술 수준을 100으로 본다면 팬텀 AI의 비전 솔루션은 99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현재 팬텀 AI는 미국의 완성차 업체 2곳,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 1곳과 기술 검증 단계를 밟고 있다. 올해 1월 중 검증을 완료해 6~7월쯤 첫 양산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이르면 2020년에는 모빌아이에 도전하는 팬텀 AI의 비전 솔루션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다.

조 대표는 "최근 출시되는 거의 모든 신차에 모빌아이의 제품이 적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비전 솔루션 시장의 ‘대항마’가 됐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 규모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고도의 기술 개발과 인력 확보를 위해 글로벌 벤처캐피탈(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데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