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성장 등 거시 경제 안정화로 구조 개혁의 추동력을 확보하겠습니다."(2017년 12월 27일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 방향')

1년 전,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경제 운용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성장 중심 경제 정책을 '낡은 패러다임'으로 규정하며 "'사람 중심 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도 기대감에 부풀었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이 조사한 소비자심리지수는 110.6을 기록, 12월 기준으로는 2010년 이후 가장 높았다. 주가는 새해에 3000까지 갈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경제 성적표는 비참하다. 수출은 사상 최대 호황인데도 32만명 늘리겠다던 취업자 증가 폭은 한때 5000명 수준까지 떨어져 마이너스(-)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투자(-1.0%)가 뒷걸음질치면서 성장률은 3%에 훨씬 밑돌 전망이다. 올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7.2까지 추락했다. 주가도 곤두박질쳐 2000선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 경직적인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 정책 때문에 어려움이 배가된 한 해였다"고 말했다.

장밋빛 전망으로 시작했던 경제가 잿빛 성적표를 남기게 된 데는 미·중 무역 갈등, 중국 경제성장세 둔화 등 외부 환경도 일부 작용했다. 그러나 '비참한 성적'의 주된 요인은 외부보다는 내부 요인, 특히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책적 요인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 다수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가 자초한 참담한 경제 성적

"올해 32만명 했으니 내년에도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지난해 말 새해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면서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을 32만명으로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면 저숙련자를 중심으로 고용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우려에도 정부는 여유만만했다.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2월부터 취업자 수 증가 폭이 급감하며 '고용 참사'가 현실화되자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온갖 이유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인구 구조 변화' '한파' '봄비' '사드 보복' 등이 이유로 등장했으나 최저임금에 대한 언급만은 한사코 피했다.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 효과가 90%"라고 강변했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놓고 정부 내부에서 1년 내내 옥신각신하는 사이 올해 고용 성적표는 목표 대비 3분의 1토막 났다.

올해 성장률이 예상을 크게 밑돈 것도 시장과 반대로 가는 정부 정책이 크게 작용했다. 정부는 당초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올해 3% 성장을 자신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2.7% 성장마저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수출에서 선전했지만 내수에서 성장률을 다 까먹은 탓이다.

반도체 경기 호황 등에 힘입어 올해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6000억달러를 돌파했고, 수출 증가율은 정부 전망치(4%)를 훨씬 웃도는 6.1%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내수, 그중에서도 투자가 크게 위축되면서 예상을 빗나갔다. 정부는 당초 "기업 실적 개선 등 양호한 여건에 힘입어 설비투자가 3.3%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기업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지난해보다 투자가 뒷걸음질쳤다.

"공공임대주택, 도시 재생 사업 투자 확대 등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할 것"이라던 건설 투자는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지출 축소, 고강도 부동산 규제 등으로 인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세계경제 흐름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정부가 정책 수정에 나서지 않으면 내년 경제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초과 세수가 30조원에 육박할 만큼 유독 세수만 호황이다. 그러면서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중산층에 대한 세금 압박이 높아지면서 내년에는 소비가 더 위축될 것"이라며 "정부가 지나치게 비대해지면서 민간을 경제활동에서 밀어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빛바랜 3만달러 시대… "내년엔 더 어렵다"

지난해 정부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양적인 성장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었다.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소득 양극화를 완화해 전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약속이었다. 작년 말 2만9745달러였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올해 3만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2만달러 벽을 넘은 지 12년 만이다.

하지만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 등 저소득,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고용 참사가 발생하면서 올해 가구 간 소득 격차는 오히려 역대 최악 수준으로 벌어졌다. 소득 하위 20% 계층의 지난 1~3분기 가구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0%, 7.6%, 7.0%씩 감소했고, 반대로 상위 20% 계층의 가구 소득은 9.3%, 10.3%, 8.8%씩 증가했다. 상위 20% 가구 소득을 하위 20% 가구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지난 1분기 5.95배로 조사를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악화 됐다.

내년에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다. 올해에 이어 또다시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있고,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호황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정부가 새로운 성장 동력 확충의 해법으로 내세우는 혁신 성장은 구호만 무성할 뿐 이해 당사자 간 갈등 조정에 실패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주요 경제 기관들은 내년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올해보다도 낮은 2.5% 안팎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년에는 특별한 요인이 없는 이상 올해보다 경제 상황이 더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민간 투자를 빠르게 되살리지 못하면 내년 이후 경기가 장기 침체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