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 남양맨 1호 CEO' 이정인 대표...조직 쇄신 단행하자 임원 반발
내부 갈등 커져...이 대표 취임 1년만에 결국 사임

갑질논란과 홍원식 회장의 세금 포탈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남양유업(003920)이 또 위기에 처했다. 이정인 대표(56)가 취임 1년도 안돼 회사를 떠나서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이정인 대표

그는 두가지 측면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창사 이래 최초의 외부인사, 회계사 출신이라는 점이다. 남양유업은 "이 대표가 어려운 회사 분위기를 반전시켜줄 인물"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남양유업의 최근 5년간 재무제표는 악화일로였다. 2013년 영업손실 17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고, 다음해에도 261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후 2015년 간신히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드보복 여파로 국내 분유업체들이 중국 수출에 제동이 걸리면서 수익이 급격히 줄었다. 2017년 남양유업의 이익은 50억원으로 전년(420억원)의 8분의 1로 줄었다. 2013년 5월 110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현재 62만원대로 떨어졌다.

이는 국내외 환경 변화도 있지만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물량을 떠넘기는 '밀어내기' 영업으로 우리 사회에 갑질 논란을 촉발했던 영향이 더 크다. 5년이 지났는데도 소비자들은 ‘남양’이란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제품까지 찾아내 알리는 이른바 ‘숨은 남양 찾기’까지 하고 있다.

남양유업 대리점 갑질 불매운동

홍원식 회장은 위기 속 구원투수로 이 대표를 영입했다. ‘재무통’인만큼 경영지표를 안정화하고 기업 전략을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였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임직원 수를 줄이는 조직 쇄신을 추진하고 프리미엄 제품 개발과 해외 수출에도 박차를 가했다. 판관비를 크게 낮추고 비유동자산을 매각해 재무개선에도 힘썼다. 남양유업의 올 1~9월까지 판관비(연결기준)는 약 1965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보다 11% 가량 줄었다. 마이너스였던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616억원으로 플러스 전환됐다. 이익도 50% 늘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가 사임한 것을 두고 업계는 1964년 창립 이후 전통처럼 이어져온 ‘순혈주의(純血主義)’를 원인으로 꼽는다. ‘비(非)남양맨’ 이 대표의 고강도 경영혁신에 기존 임원들의 반발이 컸다는 것이다.

특히 34년 남양맨으로 유력한 차기 CEO 후보였던 유용준 상무와 갈등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상무는 경영관리본부장 출신으로 이 자리는 다수의 CEO를 배출했다. 결국 유 상무는 올 중순 회사를 떠났다.

이 대표도 사내 뿌리깊게 못박힌 순혈주의를 타파하지 못하고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채 사임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회장을 비호하는 기존 임원들이 혁신을 거부하고 반발하면서 내부 갈등이 컸던 것으로 안다"며 "결국 이 대표가 이를 이기지 못하고 회사를 나간 것"이라고 했다.

남양유업 한 관계자도 "갑질논란 사건때도 불합리한 내부 프로세스와 회사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들이 기존 임원들 때문에 무산됐다"며 "당시에 급격한 매출 감소가 없다는 게 이유였는데 5년이 지난 지금 남양이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남양유업은 아직 후임 대표이사를 정하지 못했다. 후임자를 찾을때까지 경영지원본부와 영업총괄본부를 담당하는 이광범 상무가 직무를 대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