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단행된 국세청의 세무서장 인사 명단에는 뜻밖의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변광욱 조세분석과장(행정고시 42회)이 서울 동대문 세무서장으로 발령난 것입니다. 세수(稅收) 전망 등 조세정책 수립의 핵심업무를 담당했던 조세분석과장 출신이 서울시내 한 복판 일선 세무서장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죠.

기재부 세제실 과장이 국세청 세무서장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 2016년 이후 2년만입니다. 기재부 세제실과 국세청은 조세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과장급 인사교류를 실시했는데, 2016년부터는 적합한 교류대상자를 선발하지 못해 잠정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2년간 중단된 인사교류가 부활된 것은 김병규 세제실장(행시 34회·사진)이 국세청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게 주효했다고 합니다. 행시 합격 후 국세청에서 공직을 시작했던 김 실장은 조세정책을 입안하는 세제실 직원들이 세정(稅政) 현장을 경험해봐야 조세정책의 현실 적합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기재부 인사과장을 맡았었던 2011년에도 세제실과 국세청의 과장급 교류인사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제실과 국세청의 인사교류 재개는 국세청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동대문 세무서장으로 부임한 변광욱 과장과 행시 기수가 비슷한 행시 42~43회는 인사적체가 심한 기재부에서는 초임급 과장이지만, 국세청에서는 본청과 서울지방국세청의 핵심 보직 과장들에 해당됩니다. 국세청 요직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며 승진코스를 밟고있는 핵심 보직과장들이 굳이 상급부처인 기재부에 파견근무를 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게 관가의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이 때문에 김 실장은 행시 선배인 한승희 국세청장(행시33회)에게 협조를 부탁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섰고, 국세청 수뇌부에서 본청 보직 과장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세제실에서는 국세청에서 파견 온 과장을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핵심 세목(稅目)을 관리하는 보직을 주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세제실 파견근무가 국세청에서 파견 온 과장들의 경력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번 인사교류가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교류대상이 확대됐다는 점입니다. 이번에는 과장급 뿐만 아니라 세제실 사무관 4명이 국세청으로 자리를 옮기고, 국세청 사무관 3명이 세제실로 파견될 계획이라고 합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과장들만 1년 파견 형식으로 인사교류를 했을 때는 교류가 다소 형식적이었다고 느껴지는 측면이 많았지만, 사무관급 인사교류가 확대되면 국세청과 세제실의 교류가 확대되는 효과가 체감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종시 나성동에 위치한 국세청 본청.

세제실과 국세청은 세금 정책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물과 기름’ 같이 겉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기재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세법개정안에 납세자가 세무조사 현장을 녹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가 국세청이 반발한 일도 있었습니다. 현장 녹음권이 보장되면 세무조사가 위축될 수 있다는 국세청의 반대의견을 국회 기재위가 받아들여 입법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세제실과 국세청의 앙숙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인사교류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이런 반목을 수습해보자는 기재부와 국세청 고위급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세종시 관가에서는 2년만에 확대·재개된 국세청과 세제실의 인사교류가 ‘가깝지만 먼 사이’로 인식됐던 두 기관의 관계를 좁히는 계기가 될 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세제실은 상급부처인 기재부의 정책 기획을 국세청이 무시한다는 인식이 많았고, 국세청은 세제실이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을 남발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면서 "인사교류를 통해 접점을 많이 만들면 이런 상호 오해가 많이 희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