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의 삼계탕 전문점 토속촌. 점심 시간을 1시간 앞둔 오전 11시부터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테이블은 100개가 넘었지만 빈자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도 40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베트남어·일본어·영어 등으로 대화를 나누며 차례를 기다렸다.

대만인 관광객 천상유(天上瑜·25)씨는 "여행 정보 앱에서 '경복궁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정성훈 토속촌 사장은 "2016년 10명 중 7~8명에 달했던 중국인 손님이 지금은 4명 정도로 줄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 관광객들이 더 찾아오고 있다"며 "홀 서빙을 하는 직원 40여 명이 중국말보다 간단한 영어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동남아 관광객들도 줄서서 삼계탕 - 26일 서울 경복궁 인근 삼계탕 전문점 토속촌에서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여행객들이 삼계탕을 먹고 있다. 체감온도가 0도 이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점심 시간 1시간 전부터 베트남·대만·일본 등 아시아 국가 관광객들은 줄을 서 입장을 기다렸다.

지난해 3월 중국의 '사드 보복' 후 급감한 중국인 관광객의 빈자리를 다른 아시아 국가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다. 올해 방한(訪韓) 관광객 수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2016년의 90% 수준까지 회복될 전망이다. 관광업계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 관광 산업이 휘청거렸지만,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자생력'을 기르면서 경쟁력이 강화된 측면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中 316만명 덜 왔지만…

2016년 1~11월 753만명에 달했던 방한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384만명(49.1% 감소)으로 반 토막 났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도 1590만명에서 1220만명으로 370만명 줄었다. 그러나 27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11월 누적 관광객 수는 1402만명을 기록했다. 2016년보다 188만명 적지만, 2016년의 88.2% 수준까지 회복했다.

이는 일본·베트남 등 주요 아시아 국가의 방한 관광객이 늘어난 덕분이다. 2016년보다 316만명 줄어든 중국인 관광객의 빈자리를 이 국가들에서 온 관광객 119만명이 채웠다. 일본·대만·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주요 5국 관광객 수는 2016년 1~11월 총 379만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498만명으로 119만명 늘었다. 일본(59만명)과 대만(26만명)의 증가 폭이 컸다. 이 5국 관광객들이 올해 1~9월에만 국내에서 총 37억9200만달러(약 4조2500억원)를 쓰고 갔다. 특히 대만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 방문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만 관광객 수가 미국 관광객 수를 제쳤다"며 "대만은 중국·일본에 이어 3위 방한 관광 국가가 됐다"고 했다.

LCC 노선 확대, 콘텐츠 개발 먹혔다

아시아 국가 관광객들이 늘어난 기본적인 배경은 한류(韓流) 열풍이다. 이를 다양한 관광 콘텐츠 개발, 저비용항공사(LCC) 노선 확대 등이 뒷받침했다. 한국과 일본·동남아 지역을 오가는 항공편은 작년보다 주(週) 140여 편 늘었다. 항공사들은 인천·김포 등 국내 주요 공항뿐만 아니라 대구·무안 등 지방 공항과 동남아 국가의 하늘길을 잇고 있다. 대만과 한국을 오가는 LCC 노선은 작년보다 81편 늘었다. 한 달에 880여 편(20만석) 규모다. 항공편이 확대된 태국과 말레이시아 관광객도 각각 8만명, 6만명 늘었다.

'비자 문턱'을 낮춘 것도 관광객 증가에 도움이 됐다.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올해 2~4월 강원도 양양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관광객에게 비자를 면제해줬다.

올해에만 베트남 관광객 13만명이 늘어 11월 말까지 총 43만명이 한국을 다녀갔다. 한류 열풍으로 일본인 관광객도 작년보다 57만명 늘었다. 관광업계는 올해 일본인 관광객 300만명 고지를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관광업계는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등 생존 방안을 짜냈다. 그중 하나가 동남아 지역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스키 체험 상품이다. 지난 1~2월 관광공사의 스키 체험 관광 상품으로 한국에 온 동남아 지역 관광객이 2만3000여 명에 달했다. 24일 서울 명동을 찾은 필리핀 관광객 윌리씨는 "지난 3일간 평창에서 스키를 타고 오늘 서울에 도착했다"며 "패키지로 서울과 지방을 한 번에 구경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지난 9~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뮤지컬 관람 등을 제공한 '대학로 공연 관광 축제'에는 외국인 관광객 1만3000여 명이 몰렸다.

◇"자생력 키우는 계기 됐다"

전문가들은 "중국인 관광객 감소가 관광업계에는 '자생력'을 키우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 일변도'였던 한국의 관광 시장 포트폴리오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까지 넓어졌다는 뜻이다.

김현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은 "개별 국가의 관광객 수는 적지만, 아시아 각국 관광객을 유치해 전체 방한 관광객이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이충기 경희대 교수(관광학)는 "관광객이 몰리는 서울·부산과 지방 도시를 이어주는 교통 연계 시스템을 갖춘다면, 전체 관광 시장의 대형화·다양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