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 김모(58)씨는 최근 집으로 날아든 '공시 예정 가격 통지서'를 뜯어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서울 마포구 2층짜리 다가구주택(대지 43평) 공시가격이 4억8900만원에서 단 1년 만에 9억7300만원으로 2배가 된 것. 김씨는 "세무사한테 물어보니 28년 된 집에 올해 64만원 붙었던 재산세가 3년 뒤엔 220만원까지 오른다더라"며 "1층과 지하층 세 줘서 받는 돈 연 1000여만원 외에는 별다른 수입도 없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다.

한국감정원이 최근 '2019년도 표준단독(다가구)주택 공시 예정 가격' 통지서를 발송하면서, 정부가 예고한 '공시가격 현실화'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본지가 서울 25개 구(區)에서 주택 2채씩 총 50채를 무작위 추출해 내년도 공시 예정 가격을 조회한 결과, 강남·북을 불문하고 공시가격이 작년의 2~3배가 된 사례가 여러 건 확인됐다. 강남구 역삼동 3층 다가구주택(대지 56평) 공시가격은 14억3000만원에서 40억원으로 2.8배가 됐고, 관악구 남현동 2층 다가구주택(대지 62평)은 6억8800만원에서 10억원이 됐다.

표준 단독주택은 전국 단독주택(다가구주택 포함) 약 418만 가구 가운데 표본으로 지정된 22만 가구다. 나머지 단독주택 가격 평가의 기준이 된다. 공시가격이 대폭 오르면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세금은 더 크게 오른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부세 산정의 기준인데,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으면 1주택자라도 종부세 대상이 된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미 올 초 서울 전체 주택 공시가격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이후 최대치인 7.3% 올린 바 있다. 이에 따라 보유세가 급등했고, 국민연금·건강보험료 인상이나 기초노령연금·장학금 등 복지 제도 수급 탈락을 겪은 사람도 잇달아 생겨났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단독·다가구 주택은 아파트보다 젊은 층 선호도가 낮아 대부분 은퇴 세대가 가지고 있다"며 "공시가격 급등으로 고강도 세금 충격이 가해지면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표준 단독·다가구주택의 공시가격 급등은 강남과 비(非)강남을 가리지 않았다. 관악구 신림동 3층 주택(69평·이하 대지면적)은 8억2800만원에서 12억1000만원으로 46.1% 올랐고, 동대문구 이문동 단층집(46평)은 3억4700만원에서 13.2% 올랐다. 마포구 연남동 2층집(42평)은 5억1800만원에서 10억2000만원으로 배(倍)가 됐고, 영등포구 대림동 2층집(49평)은 4억7200만원에서 5억4000만원으로 14.4% 올랐다. 강남에서는 2~3배 인상도 쉽게 나왔다. 역삼동 2층집(49평)은 10억9000만원에서 31억1000만원이 됐고, 같은 동네 빌라(대지 105평)는 25억9000만원에서 83억9000만원이 됐다.

이러한 공시가격 인상은 실제 거래 가격 인상률을 훨씬 웃돈다. 정부가 말하는 '공시가격 현실화'의 결과다. 연남동 박원철 공인중개사는 "연남동 단독주택 가격은 A급 지역 기준으로 최근 1년간 평당 45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22% 정도 뛰었지만, 공시가격은 2배가 됐다"고 했다.

표준주택은 전체 주택의 공시가격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이다. 올해의 경우 1월 서울 표준단독주택 가격이 7.9% 오른 뒤, 4월 개별(전체)단독주택 가격이 7.3% 따라 올랐다. 이번 표준지 공시가격 인상률이 결국 전국 개별 주택에 적용된다는 의미다.

◇공시가격 현실화, 다음은 아파트 차례

아파트 공시가격 역시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시가격 현실화는 단독주택, 아파트 등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주택이 대상"이라고 했다.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발표는 매년 1월, 아파트 공시가격 발표는 4월에 이뤄진다.

문재인 정부는 70%를 밑도는 서울 아파트의 공시가율(실거래가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을 정권 내에 80~90% 수준까지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미 올해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을 평균 10.2% 올렸지만, 단독주택과 마찬가지로 내년에 대폭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공시가율이 낮은 아파트가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6층)는 올해 10월 17억5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연초 기준 공시가격은 9억400만원으로 현재 공시가율이 51.6% 수준이다. 강북도 마찬가지다. 은평구 신사동 신사성원아파트 84㎡(9층)는 공시가율이 58.3%에 불과하다.

◇보유세·건보료·연금 등 줄인상

공시가격 급등에 따라 보유세가 오른다. 인상 폭은 공시가격 상승폭보다 더 크다. 공시가격이 1년 새 6억88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45% 오른 관악구 남현동 2층집 주인 A씨는 가진 집이 그 한 채뿐이고 향후 공시가격 인상이 없다고 치더라도 올해 180만원이던 보유세가 내년 250만원, 후년에는 313만원으로 최종 74% 오른다. 보유세는 1년에 50%(다주택자는 100~200%) 이상 못 올리는 '세 부담 상한'이 있어서다.

파장은 세금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초연금, 건강보험료,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등 최소 61개 분야에서 기초 자료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공시지가가 30% 오를 경우 주택을 보유한 지역 가입자가 매달 내야 하는 건보료는 평균 13.4% 오른다. 전국 286만여 가구가 매달 9만385원씩 내는 건보료가 10만2465원으로 늘어 평균적으로 연간 14만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말이다. 공시가격이 10%, 20% 오르면 각각 4.6%(연 5만364원), 8.5%(연 9만2160원) 건보료가 늘어난다.

기초노령연금 탈락자 속출도 예상된다. 수령액이 월 최대 25만원인 이 연금은 소득과 함께 '가진 집의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 국민연금공단의 추산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20% 오르면 전국에서 5만6836명이, 30% 인상 시 9만5161명이 현재 받고 있는 기초연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실제 제주도에서는 지난 2년간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매년 20% 이상씩 오른 결과, 작년 기초노령연금 신청자의 43%가 심사에서 탈락했다. 한 전문가는 "결국 가진 게 집 한 채인 저소득자가 가장 큰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최근 집값, 땅값이 급등했기 때문에 언제든 떨어질 수도 있다"며 "현실화 취지는 이해하지만 당장의 시세에 맞춰 급하게 공시가격을 다 올렸다가 집값이 하락하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시간을 두고 올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