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해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며 지난 1987년 도입한 '최저임금제도'가 오히려 고(高)연봉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밀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도입의 취지와는 달리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월급 더 올리는 역설

지난 9월 고용부는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기 근로 감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올 1월부터 8월까지 현대모비스 창원공장에서 일하는 직원 496명 중 5명이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의 대졸 신입사원 연봉이 5000만원 정도인데, 이를 받고도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는다고 조사된 것이다.

고용부는 "현대모비스의 경우 월급의 750% 정도를 지급하는 상여금이 전체 연봉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명절과 격월에 나눠 지급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지난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 참가한 소상공인들이 비옷을 입고 최저임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린 뒤 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지고,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면서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대책으로 기존엔 인정하지 않았던 상여금 일부도 임금으로 간주해 최저임금에 포함하도록 했다. 단, 상여금은 매월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현대모비스처럼 격월로 상여금을 주면 여전히 임금으로 인정이 안 된다. 고용부는 "상여금을 매달 주는 것으로 바꾸면 상당수 대기업이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을 넘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24일 임금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는 기업에 내년 6월까지 최저임금 위반 단속을 유보해준다고 발표했다. 그 기간 상여금 지급 시기 등을 바꾸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여금 지급 시기는 상당수 기업에서 노사 단체협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조가 반대하면 개정이 안 된다. 노조는 "최저임금 문제는 기본급을 올려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노조가 끝까지 거부하면 기업은 급여를 올려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강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 근로자의 연봉은 더 올라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 임금격차만 커질 것"이라고 했다.

약정휴일 뺀다는데 기업 숫자도 모르는 정부

유급(有給)휴일은 '법정 유급휴일'과 '약정 유급휴일'로 이루어진다. 정부는 이중 노사 합의로 정하는 약정 유급휴일과 그에 따라 지급하는 수당을 앞으로 최저임금 산정에서 제외한다고 지난 24일 발표했다. 하지만 약정휴일을 둔 기업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노사 간 자체적인 취업 규칙이나 단체협약으로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부는)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9월부터 두 달간 108개 대기업을 조사한 결과, 1주일에 법정 유급휴일 하루만 인정하는 대기업은 전체의 절반을 약간 넘는 것(52.8%)으로 조사됐다. 유급휴일이 '1일 초과∼2일 미만' 기업이 13.9%, 2일 이상은 33.3%였다. 결국 대기업의 절반(47.2%)가량은 노사가 합의를 통해 약정 유급휴일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별 약정 유급휴일과 수당이 공개되면 대기업 근로자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는지 파악할 수 있다. 매년 주요 기업의 단체협약을 들여다보는 고용부로선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큰 파장을 일으킬 시행령을 만들면서 대상 기업을 모른다고 한 것은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의 약정휴일과 수당 등이 공개되면, 대기업·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격차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며 "정부가 시급히 나서야 할 일은 최저임금으로 인한 현장의 격차 문제를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