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시켜놓고 오랫동안 책-신문 봐도 눈치 안줘
독특한 문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될 정도

출장자에게 카페란 어떤 의미인가? 비즈니스 미팅 장소일수도 있고, 노트북 컴퓨터를 열고 급한 이메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업무공간일 때도 있고,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될 때도 있다.

도시 산책을 좋아하는 출장자에게 카페란 단순히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눈썰미가 있는 리더라면 카페에서 그곳 사람들의 고유한 기질과 행동양식, 소비행태를 관찰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빈 카페의 일반적인 풍경. 커피와 물, 그리고 철해놓은 신문, 이렇게 3가지가 서비스된다.

만약 유럽으로 출장을 떠났다면 도시마다 독특한 카페문화를 체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방문한다면 가장 유럽적인 카페문화가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카페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자긍심은 매우 높아서 이 도시가 낳은 저명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라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예찬할 정도였다.

"빈의 카페하우스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것이 없는 비교하기 힘든 매우 특별한 종류의 기관이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에게 싼값의 커피 한잔을 제공하는 민주적인 클럽 같은 곳이며, 모든 손님들은 커피 한잔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앉아서 대화를 하고, 글을 쓰거나 카드 놀이를 하고 우편물을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제한의 신문을 하루 종일 소비할 수 있는 곳이다."

작가들과 학자들이 즐겨 찾는 빈의 대표적인 ‘카페 센트랄’의 실내 모습. 매일 22개 언어로 이뤄진 다양한 250개의 신문철을 비치해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가 즐겨 찾았던 ‘카페 센트랄’은 1876년에 네오 르네상스식 건물에 오픈한 뒤, 이 도시를 대표하는 카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로베르트 무질 같은 작가들과 알프레드 아들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이 단골손님이었다.

매일 아침 22개 언어로 이뤄진 250개의 신문철을 비치해놓아서 새로운 정보와 지식에 갈증을 느끼는 지식인들에게는 응접실이자 동시에 도서관 역할도 하였다. 이처럼 많은 종의 신문을 비치해놓는다는 것은 이 도시가 추구하는 가치를 말한다.

다국적이며, 지식과 문화예술, 그리고 신문, 읽을 거리에 대해 얼마 만큼의 존중과 가치를 부여하는지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특유의 세계인적인 안목과 가치관을 담은 글들이 바로 이곳 카페에서 잉태되고 또 쓰여졌다.

카페는 아직 성공하지 않은 지식인들에게도 훌륭한 대기실의 역할도 하였다. ‘카페 센트랄’이 작가들의 단골 카페였다면, ‘카페 무제움’은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가 처음 만났던 곳도 바로 이 카페였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빈의 커피하우스는 여전히 빳빳하게 다린 흰 셔츠에 정장차림을 한 중년이 종업원이 서비스한다.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역할은 사라졌지만 제국의 품위와 고결한 기품만큼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커피 한잔 시켜놓고 장시간 동안 홀로 책을 보고 있어도 눈총 주지 않는 곳이 빈의 전통 카페들이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유명한 도시들에서 이런 경우는 빈이 거의 유일하다. 빈 카페하우스의 자긍심을 알 수 있는 말이 있다.

"빈의 카페하우스는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지만 계산서에는 오직 커피만 지불된다"

그런 덕분에 ‘빈의 카페하우스 문화’는 2011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도시의 카페가 빈의 지식인들에게 어느 정도로 특별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대목이다.

저녁시간이면 이 카페들에서 라이브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 저자와의 대담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곳으로도 활용된다.

17세기 터키군대가 버리고 간 커피 원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빈의 카페문화는 세기말 정신과 맞물려 완성되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빈은 혼란의 시기였다. 오스트리아를 500년 넘게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무너지고, 자유주의와 시민계급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회현상을 낳았다.

[[미니정보] 유럽 카페문화의 역사]

그때 대거 탄생한 것이 빈의 카페하우스였다. 음악, 철학, 미술, 건축,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천재와 거장들이 이 도시의 카페하우스를 배경으로 활약하였다.

낭만주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아르누보 건축의 거장 오토 바그너, 정신분석학의 개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분석철학의 선구자 비트겐슈타인, 슈테판 츠바이크 등 저명한 작가들이 대표적인 이름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가운데 다수가 유대인이었다. 히틀러가 집권하여 자신의 모국인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 전까지 빈에는 18만 5천명의 유대인이 거주하여 유럽 최대의 유대인 도시이기도 하였다. 이 도시의 인구 10명 가운데 한 명이 유대인일 정도였으며, 특히 금융과 학술 문화 예술 등 지배층의 비율은 압도적이었다.

19세기까지 황제와 귀족이 이 도시를 이끌었다면, 세기말과 20세기 초에는 유대인의 영향력이 가장 강했다. 학계와 문화, 예술계를 이끌던 지도층 유대인들이 모이던 장소 또한 카페였다.

그들은 카페에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생각을 논의하고 또 꿈꿨다. 유대인들은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곧 빈의 문화예술 혁명을 이뤘다. 2차대전을 거친 뒤 현재 빈의 유대인 수는 약 1만명에 불과하다.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정식 이름은 ‘아인슈패너’라 부른다.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 가운데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비엔나에 갔더니 비엔나 커피가 없던데, 왜 그렇죠?"

비엔나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가리키는 영어 이름이고, 비엔나 커피란 블랙 커피 위에 하얀 휘핑 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를 말한다. 본고장에서 ‘아인슈패너’(Einspänner)라 부르는데, 이 커피를 일본을 통해 알게 되면서 이름이 어려우니 그냥 비엔나 커피라 명명했던 것이다.

그러니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아인슈페너는 ‘자허 토르테’, ‘비너슈니첼’과 더불어 빈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체험해봐야 할 3대 식음료다.

빈의 명물 자허 토르테. 조각마다 ‘오리지널 자허 토르테’라는 초콜릿 메달이 얹혀있고 흰 생크림이 따라 나온다. 호텔 자허에서 공급한다.

자허 토르테란 빈에서 탄생한 초콜릿 케이크로, 두 겹의 진하고 강렬한 향미의 초콜릿 스펀지 사이에 살구 잼을 듬뿍 바르고 겉에는 윤기가 빛나는 초콜릿을 입힌 것을 말한다. 이 케이크의 레시피를 처음 개발한 자허(Sacher)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비너슈니첼이란 빈의 방식으로 만든 튀긴 고기요리란 뜻으로, 이를 일본인들이 동양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한 것이 바로 돈가스다.

하나의 매듭은 또 다른 하나를 잉태한다. 세기말 정신이 위대한 빈의 커피문화를 낳았듯이 한 해를 정리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의 시작이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빈의 카페문화를 탄생시켰다.

타인의 시선에 구속당한 뒤 할 수 있는 창조란 별로 없다. 뭔가 이루고자 하는 리더라면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