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간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소수가 마음만 먹으면 여론을 쉽게 독점하는 게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뉴스’나 ‘여론 조작’ 등을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가 제시됐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경남과학기술대학교(이하 경남과기대), KAIST 연구진과 함께 인터넷 백과사전, 논문, 특허 등의 진화 양상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집단지성 형성과정의 규칙을 밝혀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진은 또 모든 집단지성에서 지속적으로 소수의 영향력이 커지는 지식의 독점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연구결과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Nature Human Behavior)’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KISTI 미래기술분석센터 윤진혁 선임연구원, 경남과기대 교양학부 이상훈 교수,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로 구성된 연구팀은 복잡성이 높은 데이터에서 규칙성을 찾기 위해 복잡계(complex systems) 방법론을 도입, 대규모 집단지성 분석을 시도했다. 집단지성은 하나의 개체가 아닌 여러 개체들이 협력과 경쟁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과 결과를 의미한다.

위키백과와 논문, 특허 모두에서 축적된 지식의 양이 많아질수록 소수 저자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현상을 보였다. 위키백과 불평등 지수는 0.9 이상으로 매우 높으며, 대부분 0.8 이하의 불평등지수를 보이는 논문이나 특허에 비해서도 매우 높다.

연구팀은 먼저 273개 언어로 쓰여진 863개 위키미디어 프로젝트 각각의 성장을 측정해 변화 양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모든 데이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새롭게 지식을 업데이트하는 데 기여하는 구성원의 유입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이 독점의 영향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집단지성 형성에 기여한 자들 사이의 기여 불평등을 정량화해 불평등 지수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지식이 쌓일수록 지식 생성의 불평등 지수가 높아졌고 소수의 독점적 영향력이 증가해 기여자 행동 대부분을 지배하는 ‘독점화 현상’을 발견했다. 이같은 독점 집단은 집단지성 생성 초기에 나타나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신규 기여자가 이런 독점 계층에 진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밝혔다.

연구팀은 이러한 불평등의 ‘창발 현상’을 재현하는 행위자모형도 개발했다. 창발 현상이란 개별 구성 요소에서는 생기지 않는 현상이 구조화됐을 때 자발적으로 발현되는 현상이다. 행위자모형을 통해 지식이 축적될수록 미래의 집단지성 지식 독점이 더 심해지는 현상이 뚜렷하게 예측됐다. 현 상태를 방치한다면 온라인상의 정보가 소수에 의해 독점돼 왜곡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논문과 특허에서도 독점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논문과 특허를 많이 낸 나라일수록 소수 연구자에 더 의존한다는 것이다.

윤진혁(사진) KISTI 박사는 "복잡계 과학을 통한 새로운 접근법과 빅데이터로 인간 지성과 여론 형성 과정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대부분의 정보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현재, 풍성하고 협동적인 환경을 유지하고 소수의 독점화를 줄이려면 새로운 참여자들의 적극적 활동을 지원하고 독과점에 대해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