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커피시장에서 스타벅스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커피 전문점 경쟁이 과열로 치닫고 있지만 스타벅스는 20년째 꾸준히 성장 중이다. 최근 5년 사이 매장 수가 2배 이상 늘어 1200개를 돌파했는데도 매장마다 손님이 북적인다. 불황과 과열 경쟁으로 부침이 심한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이례적이다. 스타벅스만의 브랜드 전략, 점포 선정과 운영, 서비스, 고급화 전략은 이 시대 혁신을 꾀하는 많은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타벅스의 성장 요인을 시리즈로 분석한다.

스타벅스 더종로R점 내부

최근 맘카페와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스타벅스 다이어리 판다"는 제목의 글이 수십개씩 올라왔다.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마시면 주는 다이어리나 다이어리 교환권을 판매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게시글에는 가격이 3만2500원인 스타벅스 플래너(다이어리)를 개당 4만~5만원에 웃돈 주고 사겠다는 카페 회원들의 댓글이 달렸다.

스타벅스가 지난 2004년 시작한 ‘스타벅스 플래너’ 행사가 매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매년 11~12월 스타벅스 음료를 마시면 받는 쿠폰(e프리퀀시)을 17개 모은 손님에게 특별 제작한 다이어리를 증정하는 행사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종이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는데도 스타벅스 다이어리만큼은 불황을 모른다. 매장마다 준비한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온라인에서는 다이어리가 고가에 거래되는 현상이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 출시된 다이어리 가운데 대부분 매장에서 매진된 민트색 제품.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민트색 다이어리를 돈 주고 사겠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반드시 마셔야 하는 겨울 시즌음료의 가격이 올랐는 데도 소비자들은 개의치 않고 음료를 구매하는 분위기다. 매년 겨울 시즌음료로 판매하는 토피넷라떼의 톨사이즈 가격은 지난해 5600원에서 올해 5800원으로 약 3% 올랐다.

한국처럼 소비자의 요구와 취향이 급속도로 변하는 시장에서 10년 이상 꾸준히 인기를 끌기란 쉽지 않다. 새해를 앞두고 매년 ‘스타벅스 다이어리 대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스타벅스의 브랜드 마케팅과 소비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소비하고 고급 다이어리를 쓴다는 후광 효과 심리가 가장 크다"면서 "여기에 스타벅스는 최근 유통업계에서 각광받는 게임화(gamification) 전략을 이전부터 효과적으로 활용해 왔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다이어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17잔을 채워 다이어리를 얻기까지 느끼는 재미와 성취감에 매년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확행(소소하지만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도 궤를 같이한다. 서 교수는 "쿠폰을 하나씩 모으는 재미를 더해 소비자의 참여를 높였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용 스타벅스 다이어리

비용 측면에서만 보면 음료 17잔을 구매하고 다이어리를 얻는 구조는 합리적이지 않다. 다이어리 하나의 가격은 3만2500원인데, 음료 17잔(아메리카노 14잔+시즌 음료 3잔)의 최소 비용은 6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다이어리를 비용이 아닌 일종의 사은품으로 여긴다.

지난 5년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사용했다는 직장인 윤모(32)씨는 "커피를 자주 마시기 때문에 마시면서 다이어리를 덤으로 얻는 기분으로 쿠폰을 모은다"고 말했다.

다이어리가 한정판이라는 희소성도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매년 크리스마스(성탄절)를 앞두고 이뤄지는 이벤트는 일종의 선물 같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게다가 디자인이 매번 달라 올해 얻지 못하면 같은 디자인의 다이어리를 내년에 구할 수 없다는 불안심리도 작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벅스가 올해 100만권을 준비하는 등 물량을 늘렸는데도 수요가 더 많아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매년 색다른 다이어리를 선보이기 위해 다이어리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관계자는 "행사가 끝나는 1월부터 자료를 모아 기획을 시작하는 1년짜리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전년도 판매 실적, 고객 반응, 스타벅스 직원 의견을 분석해 개선점을 찾은 뒤 다이어리 제작에 들어간다.

소비자들 중에는 "과거 손으로 쓰던 다이어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스타벅스 다이어리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로 꼽았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다이어리 품질을 매년 개선한다는 점도 인기 비결이다. 스타벅스는 몰스킨 같은 세계적 다이어리 전문 업체, 색채 전문업체 팬톤 등과 협업해 표지·내지 디자인, 종이 재질, 포장재까지 꼼꼼하게 따져서 만든다. 올해는 몰스킨과 이탈리아 편집매장 ‘10 꼬르소 꼬모’와 손잡았다.

주부 한모(36)씨는 "쿠폰을 모아서 다이어리를 얻는 재미도 쏠쏠한 데다가 시중에 파는 다이어리보다 예쁘고 품질도 좋아 매년 찾는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타벅스가 다이어리 행사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더 큰 브랜드 효과를 얻어간다고 분석한다. 두달의 행사기간 동안 스타벅스를 찾는 고객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다이어리로 좋은 경험을 한 고객의 브랜드 충성도와 소속감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한 커피 업계 관계자는 "스타벅스의 선례를 따라 다이어리를 도입한 커피 전문점이 많지만, 스타벅스만큼의 브랜드 파워가 없어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