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이면서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장기 국채 금리가 하락(채권값 상승)하면서 국내 채권형 펀드가 국내 주식형 펀드나 해외 펀드에 비해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내 채권형 펀드에 최근 1개월 새 4800억원가량이 순유입되는 등 투자자들 사이에서 높지는 않지만 확실한 수익률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채권 펀드 '나 홀로 질주'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채권형 펀드 261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평균 2.55%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17.68%, 해외 주식형 펀드는 -10.98%, 해외 채권형 펀드도 -2.57%로 마이너스 일색인 데 반해 혼자 플러스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국내 채권 펀드 중에서도 국공채 펀드 수익률이 평균 3.46%로 가장 높았다. 10년물 이상 장기 국고채에 투자하는 펀드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키움KOSEF10년국고채레버리지증권상장지수신탁(ETF)'과 '키움KOSEF10년국고채증권ETF'는 각각 10.51%, 5.98% 수익을 올려 국내 채권 펀드 중 수익률 1~2위를 차지했다. 'NH아문디 Allset국채10년인덱스', '삼성KODEX10년국채선물증권ETF'도 5% 넘는 수익률을 냈다.

◇어두운 경기 전망에 장기 금리 내리고 가격 올라

국내 채권 펀드의 선전은 국내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고 장기 금리가 하락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지난달 30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년 만에 올렸음에도 불구, 장기 국채 금리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해 초 연 2.119%였던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꾸준히 하락해 지난 14일 1.781%로 연저점을 찍었다. 같은 기간 10년물 금리도 2.489%에서 1.978%로 떨어졌다. 은행 대출 금리에 영향을 주는 단기 금리는 기준금리 인상 이후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 장기 금리는 한은의 금리 인상보다 경기 전망의 영향을 더 받기 때문이다.

국내 경기 전망은 올 하반기 들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난 3분기 이후 국내 상장사 실적 추정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주요 연구기관이 경제성장률 전망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0일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 증가세도 완만해지면서 경기가 점진적으로 둔화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2.6%에서 2.5%로 내렸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장기채 금리 하락(채권 가격 상승) 속도가 빨라졌고, 이에 따라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 수익률이 오른 것이다. 장기 금리는 향후 경제성장률이나 물가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될 때 떨어진다.

◇정부 곳간 두둑해지자, 국채 발행 줄이고 조기 상환 늘려

경기 전망뿐 아니라 채권 수급 여건도 장기 금리를 끌어내리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세수 진도율은 98.2%에 달했다. 1년간 걷기로 계획했던 세금을 이미 거의 다 걷었다는 의미다. 세금이 많이 걷히자 정부의 국채 발행 규모가 줄고 조기 상환이 늘었다. 정부는 이달 국고채 조기 상환 규모를 당초 4조원에서 7조4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 금리가 중장기물 중심으로 5주 연속 하락했다"며 "정부의 국고채 조기 상환 확대로 장기물 금리의 하락을 견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오창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금리를 올리면서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했지만 시장에선 오히려 금리 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이번 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 속도 둔화가 가시화되면 국내 채권 금리 하락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장기 금리가 반등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에 국내 투자자들은 채권형 펀드에 더 많은 자금을 넣고 있다. 14일 기준 국내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총 23조1101억원으로, 1개월 만에 4791억원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