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성장률·취업자수 증가폭 하향 조정
"모든 정책수단 총동원해 경제활력 제고할 것"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탄력근로제 연장기간 연장 추진
정부가 내년 취업자수 증가폭과 경제성장률을 10만명대와 2%중반대로 전망하면서, 내년에도 한국경제가 경기부진과 고용침체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취업자수 증가폭은 2009년, 성장률 전망치는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경기 위축과 부동산 규제 등으로 설비·건설 투자가 잔뜩 움추려있는 상황에서 미국 금리인상과 미·중 통상마찰 등으로 글로벌 경제의 하방리스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경기와 고용이 쉽게 살아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경제인식이다.

정부는 경제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기업과 공공부문의 투자확대에 ‘올인’하기로 했다. 투자가 살아나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기도 살아난다는 민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 등 대규모 기업 투자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공공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실시한 정책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2020년 최저임금 심의 때부터 적용될 결정구조를 개편하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부진한 경기·고용 지속될 듯

정부는 1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했다.

이날 확정된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는 올해 2.9%, 내년 2.8%로 제시했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6~2.7%로 하향조정했다. 지난 7월에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는 2% 후반대의 경제성장을 자신했지만,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수립하면서 2% 중반대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이다. 2.6~2.7%의 성장률은 지난 2012년(2.3%)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 예상이 틀리지 않더라도 내년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취업자수 증가폭 등 고용 전망은 훨씬 더 어둡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18만명, 내년 23만명으로 제시된 취업자수 증가폭 전망치는 올해 10만명, 내년 15만명으로 대폭 낮아졌다. 올해에 이어 내년도에 취업자 수 증가폭이 2009년 이후 최저치인 10만명대에 머물 것이라는 게 정부 전망이다. 취업자수 증가폭이 15~64세 생산가능인구 연 평균 증가폭인 20만명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용침체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정부는 내년 예산(469조6000억원)이 올해에 비해 40조원 이상 늘어나는 등 정부 재정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게 성장세를 어느 정도 보강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도규상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수출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내년 경제여건이 올해보다 더 좋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 등이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전망한 것은 재정확대 등 정부 정책효과가 반영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신사옥이 GBC가 들어설 서울 삼성동 구 한국전력 부지.

◇ 투자촉진 통한 경제활력 제고에 정책 집중

정부는 내년 경제정책의 4대 방향으로 △전방위적 경제활력 제고 △경제 체질개선 및 구조개혁 △경제·사회의 포용성 강화 △미래 대비 투자 및 준비 등으로 설정했다. 투자활력 제고, 수출경쟁력 강화, 핵심규제 혁신, 주력산업 경쟁력·생산성 제고, 서비스산업 획기적 육성, 신기술·신산업 창출 지원 강화 등 실물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 정책 과제에 포함됐다. 정부는 "재정·금융·제도개선 등 가용한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전방위적으로 경제활력 제고 등을 강력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투자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정부는 인허가 문제로 표류하고 있는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했다. 3조7000억원이 투입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자동차 GBC, 1조6000억원이 들어가는 SK하이닉스(000660)의 반도체 특화클러스트 등이 내년 중 착공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또 항만개발, 도심지 하수처리장 현대화, 대도시권 교통사업 등 모든 공공시설 건설에 민간자본 투자가 가능하도록 각종 제도를 정비하기로 했다. 대규모 기업 투자프로젝트 추진과 민간투자사업 대상 확대 등을 통해 민간자본 12조4000억원 이상이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광역권 교통·물류기반 구축 사업 등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등 지역의 대형 SOC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다. SOC 예비타당성조사 실시 대상 기준을 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국비 50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법 개정도 추진한다. 2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세종-안성 고속도로, 3조원이 투입되는 파주-삼성 간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교통(GTX) A노선 등은 조기착공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업 경쟁력 강화를 촉진하는 정책도 추진된다. 자금경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계에 대규모 금융지원 프로그램이 도입되는 등 경쟁력 약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자동차·조선·디스플레이·석유화학 등 제조업 혁신을 위한 사업도 추진된다. 바이오업계에서 요구했던 글로벌 수준 신약개발을 위한 해외 3상 임상 비용을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말에 종료될 예정이었던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차값의 5%→3.5%) 조치가 내년 6월말까지 연장되고, 서울 등 시내 면세점을 추가 설치하는 등 소비·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 방안도 병행 추진된다.

◇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속도조절

반면 정부가 올해 내내 역점을 뒀던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확충과 관련된 정책은 우선순위가 조정되거나 축소되는 모습이다. 올해 중 최우선 과제로 추진됐던 일자리 소득 정책은 포용성 강화 정책 중 취약계층 일자리·소득 지원 방안으로 비중이 축소됐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추진됐던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등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속도조절이 이뤄진다. 올해와 내년에 총 30% 가량 인상돼 고용시장에 충격을 준 최저임금은 결정구조를 개편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작업반)를 통해 내년 1월 중 정부안을 마련해서 2월 중 관련 법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은 개편된 결정구조 하에서 시장수용성·지불능력·경제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방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고, 2월 중 관련 법안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확정될 때까지 근로시간 단축 위반에 대한 처벌은 유예될 전망이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 완료시까지 현장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계도기간을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