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대학 입시생과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대학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그래서 수시 지원 결과가 나오는 12월부터 정시 지원 합격자 발표가 이뤄지는 1월 사이엔 이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전에는 설령 입시 결과를 묻는 게 아니라도 먼저 안부 전화를 하는 것조차 부담된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합격 통지를 받아든 경우라면 몰라도, 1년 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할 수험생과 그 부모 처지에 놓였을지 모를 일 아닌가. 낙방, 그리고 재수의 아픔.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일반적인 경우 인생의 큰 굴곡이 없다고 가정해 보면, 아마 많은 이들이 실패의 쓴 잔을 처음 경험하게 되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을 때가 아닐까 싶다. 요즘은 인기 많은 유치원이니 유명 학원이다 해서 사교육 현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니 실패와 좌절의 첫경험이 더 빨리 찾아올지 모르겠으나, ‘일반적인 경우’에서는 일단 빼둔다.

어쨌든 고생 끝에 대학 합격의 기쁨을 누려도 삶의 경쟁에서 오는 ‘당락’의 희비는 늘 우리 주변에 있다. 대입의 문턱을 넘어서고 나면 이젠 직장을 구하기 위해 수십, 수백 대 1의 경쟁의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연애를 하는 것도, 회사에서 상여금을 받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오르는 것도 경쟁이고,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빈 자리를 잽싸게 꿰차야 하는 것도 샐러리맨이 매일 겪으면서도 모르고 지나치는 삶의 숨은 경쟁일지도 모르겠다.

집을 살 땐 또 어떤가. 내 돈 내고 사는 집이라고 하지만, 이미 지어진 집이 아니면 경쟁을 통해야만 거머쥘 수 있다. 국민주택 건설에 필요한 건설 기금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1977년 청약제도가 처음 만들어진 후로 새 아파트를 사려면 과거엔 ‘0순위’에 들어야 했고, 지금은 ‘1순위’ 경쟁을 뚫어야 한다.

청약청약제도 도입 후 41년간 18번에 걸쳐 주택 경기 부침에 따라 수요 조절과 투기억제 수단으로 활용돼온 청약제도는 요즘처럼 신규 청약으로 수요자들이 집중될 때엔 수십 대 1은 기본이고 수백 대 1의 높은 경쟁을 뚫어야 하는 내 집 마련 ‘전쟁’의 룰인거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샌 누가 어느 분양 아파트에 청약 신청을 했다고 하면 궁금하긴 하지만 먼저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살짝 민망하다. 새로 쏟아지는 아파트마다 주변 시세보다 낮은 ‘로또 아파트’라 불리고 1순위 자격만 되면 너도나도 청약 대열에 나서니 경쟁률만 놓고 보자면 입시 경쟁은 저리 가라 수준이다.

이들에게도 우열이 있으니, 그 잣대는 청약가점이다. 가점이 높은 순서대로 당첨자를 뽑으니 청약자들에게 있어 가점은 입시생들의 수능 점수와도 같은 셈이 돼버렸다. 수능 점수를 토대로 이른바 ‘SKY대(서울∙고려∙연세대)’와 ‘인서울(서울 소재 대학)’ 등의 대학 배치표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젠 청약가점을 놓고 강남권 브랜드 단지, 강북 안정권 점수 등으로 분류되는 현실이 됐다.

대학만 들어가면, 회사만 들어가면 점수라는 평가에서 해방될 것 같았지만 다시 학점과 토익∙토플, 인사고과로 평가를 받고, 새 집을 사는 데도 가점에 기대야 하는 점수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아파트 청약 탈락쯤이야 가뿐히 털어낼 수 있는 일 아닌가. 재수처럼 힘든 1년을 더 견뎌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분양은 계속되고 탈락의 고배를 들수록 가점이 높은 이들은 내 앞에서 하나둘 당첨의 기쁨을 안고 사라져주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