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중 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16만5000명 늘어 5개월 만에 10만명대를 회복했다. 정부에선 "지표가 최악(最惡)을 벗어나 다행"이라며 반색하지만 65세 이상 노인 일자리, 혈세(血稅)로 만들어낸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정부가 최악의 고용 참사에서 벗어나려고 10월부터 부처와 공공기관들을 총동원해 5만개 넘는 임시 일자리를 만든 덕에 고용의 양(量)은 잠시 회복됐지만, 질(質)은 더 나빠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계청이 12일 '11월 고용동향'을 발표하면서 "11월 취업자가 2718만4000명으로 작년 11월보다 16만5000명 늘었다"고 밝혔다. 6월(10만6000명) 이후 5개월 만에 10만명대 수치이고, 1월(33만4000명) 이후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취업자 증가가 주로 세금이 만들어낸 일자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공무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과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만 취업자가 20만명 가까이 늘었다. 정부가 단기 일감을 제공한 정보통신업과 농림어업 분야에서도 취업자가 각각 8만명 넘게 불었다.

공공 일자리가 늘어난 반면 서민들이 종사하는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사업시설 관리 및 임대 서비스업에선 취업자 숫자가 21만9000명 줄었다. 이 업종들의 일자리는 14개월 연속 줄고 있는데, 경기 침체에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등 정부가 자초한 악재까지 겹쳐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생존 기반이 바닥부터 무너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취업자 비중이 가장 큰 제조업 취업자 수도 9만1000명 줄어 8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우리 사회의 허리에 해당하는 30~40대 취업자는 계속 줄어드는데 65세가 넘는 노인 취업자는 유례없이 급증하고 있다. 30대와 40대 취업자는 각각 9만8000명, 12만9000명 줄었지만 65세 이상 취업자는 19만4000명 늘어 1999년 6월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을 해야 식구를 먹여 살리는 30~40대는 일자리가 줄고, 소일거리나 용돈 벌이 정도인 노인층 일자리가 급증하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라고 했다.

고용시장 전체를 볼 때, 더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의 단기(短期)화에 따른 취업자들의 소득 감소다. 지난달 국내 취업자의 주당 근로 시간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2시간 줄었다. 이를 취업자 수(2700만명)와 시간당 임금(1만원 가정), 1년이라는 취업 기간(52주)으로 곱해 보면 취업자들의 연간 소득 감소액이 16조원이 넘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올해 투입한 예산 19조3000억원에 맞먹는 돈이다. 게다가 그동안 정부가 취업자보다 중시해온 실업률이 악화된 것은 안으로 곪고 있는 일자리 상황을 방증한다. 11월 기준 실업자는 90만9000명으로 1999년 11월(105만5000명) 이후 19년 만에, 실업률은 3.2%로 2009년 11월(3.3%)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가 질 낮은 일자리로 수치를 올려놓고, 이를 근거로 고용이 개선됐다고 보는 '셀프 착시'에 빠질까 염려스럽다"며 "연령별로는 30~40대, 업종별로는 제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 전체 고용이 개선되는 낙수(落水)효과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