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 대책 마련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지난 7일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특허·영업비밀을 침해할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특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하도급 관계에서 손해를 입히면 최대 10배까지 배상하는 하도급법 개정안 통과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데 이어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호 정책으로 추진하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중기부 유관기관인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올 1월 발표한 '2017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를 보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가 그 정도로 심각한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올해로 12년째를 맞은 이 조사는 기술보호 분야 대표 실태조사입니다. 지난해 조사 기업만 중소기업 2293개 등 모두 2693개에 이릅니다.

해당 조사에서 기술 유출·탈취 피해 유형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기업의 기술 탈취'를 꼽은 경우는 2016, 2017년 2년간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많은 답이 나온 항목은 '경쟁사로 기술 유출'(42%), '기술인력 빼가기'(27.3%), '내부 직원의 기술 유출'(25%) 등이었습니다. 기술을 유출한 관계자가 현재 무엇을 하는지 묻는 문항에도 '대기업으로 이직했다'는 답변은 2016, 2017년 모두 0건이었습니다. 반면 '국내 중소기업 이직'(49.3%)과 '창업'(16.4%)이 3분의 2에 달했습니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응답자인 중소기업들이 답변 내용 유출이나 정부기관의 추후 조사에 부담을 느껴서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현재의 대·중소기업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반응도 많습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는 과거의 일이며 최근처럼 대·중소기업 간 기술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정책은 추정이 아닌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정부는 우선 중소기업 기술 탈취 실태부터 정확히 파악하고 정말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를 위해 필요한 지원책부터 추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