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년간 한류(韓流) 콘텐츠 수출의 대표 주자였던 게임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작년 중국·유럽·동남아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며 연간 5조원대 수출을 올렸지만 실적 악화와 외산 게임 공세에 휘청대기 시작한 것이다.

6일 본지가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국내 게임 업체 35곳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인 18개 업체가 올 3분기 영업 적자(赤字)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1분기에는 여섯 업체만 적자를 기록했지만 2년 만에 세 배로 늘어난 것이다. 올 3분기 상장 게임 회사 35곳 영업이익을 합하면 3648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3.4%나 줄었다. 개발을 담당하는 중소 게임 업체와 유통·서비스를 책임지는 대기업들의 실적이 동시에 급락하고 있다.

김정수 명지대 교수(산업경영공학과)는 "해외 게임의 공세에 대기업 독과점 구조가 굳어지면서 중소 게임사들이 창의적 게임을 시장에 내놓기 어려워졌다"며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개발 속도까지 늦춰지면서 한국 게임 경쟁력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3분기 게임 업체 영업이익 합계 작년 대비 33% 급락

넷마블·엔씨소프트·넥슨 등 한국 게임을 이끌었던 대표 게임 업체들은 올 들어 나란히 실적이 꺾이고 있다.

작년 모바일 게임인 '리니지M'을 통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던 엔씨소프트는 올 3분기 영업이익이 1390억원에 그쳐 1년 전보다 57.6%나 하락했다. 넷마블 역시 작년보다 40% 줄어든 영업이익 672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도 자(子)회사인 네오플이 중국에서 벌어들인 '던전앤파이터'의 로열티 수익을 제외하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게임업계에서 신작이 줄어들고 외산 게임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대표적 한류 상품인 한국 게임산업이 위축되고 있다. 사진은 엔씨소프트가 PC 게임 리니지를 모바일 버전으로 만든 ‘리니지M’(왼쪽)과 한국에 출시한 미국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

그나마 3대 게임 업체가 흑자를 지키는 것은 예전에 내놓은 게임들이 돈을 벌어오기 때문이다. 리니지M는 2017년, 던전앤파이터는 2005년에 나온 작품이다. 올해 내놓은 신작 가운데 수백억원 단위의 수익을 내는 흥행 게임은 거의 없다.

중소 게임 업체들은 대기업들이 장악한 유통망을 뚫지 못하고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모바일 게임 업체 게임빌은 올 3분기 적자 67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연간 영업이익 170억원대를 기록했지만 지금은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한때 모바일 액션 게임 분야의 강자로 꼽혔던 썸에이지는 올 3분기에만 무려 99억원 적자를 냈다. 매출은 고작 4억9000만원에 불과하다.

파티게임즈는 11분기 연속 적자를 내다가 지금은 감사 의견 거절을 당해 상장 폐지 위기다. 모바일 게임 개발사인 넵튠·액션스퀘어·조이맥스·데브시스터즈 등도 각각 20억~40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당장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상황이지만 신작 한 건만 성공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로 근근이 버티는 게 중소 게임 업체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신작 부재, 외산 게임 득세, 52시간 근로제로 실적 악화 우려

게임 업체들의 실적 급락의 배경에는 신작 부재(不在)와 중국·미국 등 해외 게임의 공세 등이 있다. 올해 대형 게임사들이 신작 개발에 도전하기보다 과거 인기 있었던 PC 게임을 모바일 버전으로 재편해 출시하는 경우가 많아진 데다 크게 히트한 작품도 거의 없었다. 실제로 엔씨소프트가 작년부터 내년까지 출시했거나 출시 예정인 게임 9종 중 6종이 PC 게임인 리니지와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을 모바일 버전으로 재편한 게임이다.

중국·미국 등 외산(外産) 게임의 진입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국내 PC 온라인 게임 시장의 PC방 점유율 순위에서 상위 5개 게임 중 3개가 미국 게임이다.

세계 PC·모바일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총 쏘기 게임인 '포트나이트'를 개발한 미국의 에픽게임즈는 국내 출시에 발맞춰 수백억원대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의 이펀게임즈 등이 개발한 모바일 게임들은 매출 상위 10위권 이내를 넘나들며 약진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와 게임 업계에 속속 등장한 노조도 게임 업계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다 넥슨, 스마일게이트에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연이어 설립되면서 신작 개발이 더 늦춰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게임은 트렌드 변화에 맞춰 적기에 출시하는 게 핵심 경쟁력"이라면서 "게임 업체들이 올 한 해 주 52시간 근무 체제 도입에 대응하느라 신작 개발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