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G전자의 인공지능(AI) 서비스 '빅스비'와 '씽큐'는 지난 5일 새 두 차례나 먹통이 됐다. 지난 22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서울에서 운영하는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서비스가 자체 오류로 84분간 멈춘 게 첫 번째였다. 삼성·LG 인공지능의 주요 데이터를 보관 중인 아마존의 서버(중앙 컴퓨터)에 장애가 생기면서 인공지능도 작동을 멈춘 것이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탑재된 TV와 에어컨도 묵묵부답이었다. 휴일이었던 지난 24일에는 KT의 서울 아현 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서울 다섯 구(區), 경기 고양시 일부 지역에 거주하는 수십만 고객이 인공지능을 쓰지 못했다. 이번엔 서버는 살아 있었지만 이를 전달하는 신경망이 끊긴 것이다.

인공지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 세계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분야다. 하지만 아마존·KT, 두 회사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사고에 인공지능 서비스는 맥없이 끊겨 버렸다. IT 업계에서는 불과 이틀 간격으로 발생한 사고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재앙이 어떤 것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준 한 단면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 이정동 산업공학과 교수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裏面)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84분간, 휴일에… 지옥을 잠깐 맛봤다

지난 22일 아마존웹서비스의 서울 지역 클라우드는 오전 8시 19분부터 9시 43분까지 작동이 멈췄다. 인터넷 창에 문자로 홈페이지 주소(예를 들어 www. naver.com)를 치면 숫자로 된 실제 주소(125.209.222.141)로 연결해주는 서비스에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쇼핑(쿠팡·마켓컬리), 게임(넥슨·펍지), 동영상(푹), 음식 배달(배달의민족), 가상 화폐 거래(업비트·두나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해당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기업들의 서비스가 완전히 멈춰섰다. 다행히 평일 출근 시간대, 업무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라 피해가 그나마 적었다.

지난 24일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 지사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전국 835곳의 D등급 시설 중 한 곳이었는데도 통신 대란을 빚었다. 만약 전국 80곳의 A~C 등급 중요 시설이었다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졌을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금융거래와 각 기업의 비즈니스가 분·초 단위로 진행되는 평일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했다.

두 사고 모두 백업(back-up·보완)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를 본 기업들은 아마존 클라우드 한 곳에만 의존했고 KT는 D급 시설이라 별도 백업망을 두지 않았다. 카이스트 오준호 기계공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이든, 소프트웨어든 이미 너무 복잡한 단계에 접어들어 인간이 오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면서 "철저한 다중화 전략과 비상시 서로 자원을 공유하는 협력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불거진 안정성… "선 깐다고 4차 산업혁명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통신망 의존도가 더 크기 때문에 사고 여파 역시 광범위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 분야가 자율주행차다. 만약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의 도로에서 자율주행차가 달리고 있었다면 차량이 당장 멈춰 섰거나 사고를 일으켰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손주찬 책임연구원은 "현재는 통신이 끊겼을 때 자율차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시나리오와 안전성 검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러 대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주 먹통이 됐던 아마존웹서비스는 현재 전 세계 클라우드 시장의 34%를 차지한 1위 업체다. 애플·삼성을 비롯해 세계 190국에 100만여 고객이 아마존에 핵심 데이터를 맡기고 있다. 이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지면 별도 예비 클라우드를 만들지 않은 기업·정부·공공기관은 꼼짝없이 모든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아마존과 MS· IBM·구글 등 미국의 '빅4' 기업이 차지한 것도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국가 안보 차원에서 통신망·데이터 안정성 확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