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에게 피난처(refuge)가 없다." 25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주식, 채권, 원유 등 주요 자산군이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주식·채권은 물론이고 원자재에 신흥국 통화까지 각종 투자 자산의 가치가 동반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 시장 전망도 어두운 상황이라 투자자들이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식·채권 동반 마이너스 수익"

이날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가격을 추적하는 70개 글로벌 자산군 가운데 90%가 올해 들어 11월 중순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세계 주요 주식시장이 하락세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미국 뉴욕 증시도 최근 기술주 실적 악화 우려로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연초보다 2.17% 내렸다. 유로존 대표 지수인 유로스톡스50도 연초 이후 10.11% 하락했고, 중국 상하이 지수는 무려 22.96% 떨어졌다. 한국 코스피도 17.03% 내렸다. 특히 미국 대형 기술주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던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알파벳(구글 모회사) 등 이른바 '팡(FAANG)' 주식이 전고점 대비 20% 넘게 급락하면서 약세장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기술 관련 26개 펀드가 지난 3분기에 페이스북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여기에 미국 시장 금리가 뛰어오르면서 채권 수익률도 마이너스대로 떨어졌다. 통상 채권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지난 7일 연 3.24%를 넘어서면서 2011년 이후 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현재는 3.04%대로 다소 진정됐지만, 연초 2.41%에 비하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릴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연준은 오는 12월 금리를 한 차례 더 인상하고, 이어 내년에도 3차례 더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글로벌 주식과 채권의 올해 수익률이 모두 '마이너스 영역'을 기록하는 것은 최소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원유·금·신흥국 모두 부진

주식·채권뿐 아니라 원유와 구리, 금과 같은 원자재 투자 수익률도 저조하다. 특히 국제 유가는 최근 폭락세를 거듭하면서 10월 고점 대비 34%나 떨어졌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 23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0.42달러까지 떨어졌다. 세계 경기 둔화 가능성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와 공급 과잉 부담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금값도 연초 이후 7% 이상 떨어진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신흥국 통화 역시 미국 달러화 대비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미국 금리 인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달러화 강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에드 컨 QMA자산운용사 수석 투자전략가는 "모든 자산군의 투자자들이 각자 목표가 있었겠으나, 누구도 만족할 만한 수익률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수년간 글로벌 강세장을 이끌어온 미국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금리는 계속 오르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정책 효과가 끝나고,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한 높은 관세가 미국 기업 실적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