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사이퍼(Decipher)’라는 서울대 한 학회에서 블록체인을 연구하던 두 청년이 창업을 결심한 건 올해 4월 즈음이었다.

해킹이 빈번한 블록체인 업계에 가장 필요한 건 보안 감사 서비스라고 판단했다. 특히 ICO(암호화폐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주로 사용되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에 초점을 맞췄다. 둘은 가족처럼 매일 붙어 다녔다. 사업 계획을 구체화한 지 두 달이 되던 지난 6월, 국내 최초 스마트 계약 보안 감사 업체 ‘해치랩스(HAECHI LABS)’가 탄생했다.

김종호(왼쪽) 해치랩스 대표, 김민석 해치랩스 공동창업자. 해치랩스의 사무실은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해시드가 운영하는 해시드 라운지에 있다.

김종호 해치랩스 대표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 기업)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의미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막 생겨난 블록체인 산업에서 기회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과 세계 시장’이란 비전을 품은 건 김민석 공동창업자도 마찬가지였다.

보안 감사 서비스가 통할 것이란 예상은 적중했다. 서비스가 필요한 고객이 실재했고 해치랩스는 설립 4개월여 만에 이익을 내는 단계에 진입했다. 해치랩스의 기술과 서비스에 관심을 가진 해외 개발자가 먼저 연락하는 일도 많았다. 김민석 공동창업자는 "최근 블록체인 개발 속도를 높여주는 솔루션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말 김종호·김민석 공동창업자를 만나 해치랩스와 블록체인 산업의 미래를 물었다.

◇ 전설 속 동물 해치처럼 코드 분석…"블록체인 산업 이제 시작"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종호 "해치랩스 CEO 김종호다. 서울대 블록체인 학회 디사이퍼 부회장을 맡아 블록체인과 스마트 컨트랙트를 연구하다가 해치랩스를 설립했다."

민석 "블록체인 연구 커뮤니티 '논스(nonce)'에서 연구하다가 김종호 대표와 디사이퍼를 알게 됐다. 디사이퍼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블록체인 분야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올해 6월 1일 법인을 설립했다."

-회사 이름이 독특하다. 어떤 뜻을 담았나.

종호 "전설 속의 동물인 해치에서 따왔다. 해치는 선과 악을 판단해 안다고 하는데, 보안 감사랑 비슷한 부분이 있다. 보안 면에서 잘 짠 코드(프로그래밍), 잘못된 코드를 판단해 주기 때문이다. 최근엔 블록체인 개발 솔루션도 제공한다.

‘부화하다’는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 ‘hatch’와도 발음이 비슷하다. 우리 솔루션을 이용해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부화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담았다."

-주요 서비스는 무엇인가.

종호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스마트 컨트랙트 보안 감사인데, 코드에 보안 취약점이 있는지, 이더리움 블록체인 가스비(gas price, 수수료)가 최적화돼 있는지 등을 분석해 알려주는 개념이다. 두 번째는 블록체인 개발을 쉽게 하도록 돕는 솔루션이다. 웹이나 앱(애플리케이션)과 비교하면 블록체인 개발 솔루션은 훨씬 미흡하다."

민석 "블록체인 산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관련 기술도 초기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스마트 계약 보안 감사나 블록체인 개발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가 많지 않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유의미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해치랩스는 지난 10월 16일 미국 이더리움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컨센시스(Consensys)의 자회사인 미스릴(Mythril)과 스마트 컨트랙트 보안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종호 "커플 메신저 앱 '비트윈'을 개발한 VCNC, 공기 상태 측정 기기 만드는 어웨어(AWAIR)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해 처음 접한 건 작년 여름이었다.

어웨어의 공기 측정 데이터를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공부할수록 암호 경제(crpyto economy)에 빠져들었다. 본격적으로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올해 초 퇴사했다."

민석 "미국 농업 기술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때였다. 리서치를 하던 중 월마트가 IBM과 공급망 추적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려 한다는 소식을 봤다. 처음엔 큰 관심을 안 가졌는데, 작년 말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불었고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논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 분야에서 재밌는 도전을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창업할 때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민석 "창업이 저에게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는 길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지금은 응원해주시고 있다."

종호 "표면적으론 크게 걱정 안 하시는 것 같다. 대학 입학 때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다. 실리콘밸리도 다녀오고 했기 때문에 제가 창업할 것이란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언제든 기회 오면 할 거라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놀라진 않으셨다."

◇ 구글 파이어베이스처럼 솔루션 제공해 개발 속도 단축

-보안 감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종호 "예를 들어 토큰(디지털 자산)을 상장하려고 하는데, 코드가 잘못돼서 발행량 보다 많은 토큰을 발행할 수 있으면 안 된다. 토큰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도 중요하다. 보통 백서(white paper)에 명시하고 있는데, 이걸 제대로 안 지키면 문제가 된다. 락(일정 기간 매매 금지)이 제대로 걸려 있는지도 확인한다.

이런 다양한 정보를 스마트 컨트랙트 상에서 분석해 암호화폐 거래소나 블록체인 프로젝트팀에 전달한다. 거래소나 프로젝트팀은 우리가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상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동적 프로그램 분석(dynamic program analysis), 기호 실행(symbolic execution) 등을 활용해 코드가 잘 작동하는지 검사한다."

-블록체인 개발 솔루션에 대해 설명해 달라.

종호 "개발을 도와주는 도구인 라이브러리,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구글이나 아마존이 만들어 놓은 서비스를 가져와서 앱이나 웹 개발을 하는 것처럼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 개념의 솔루션인 셈이다. 이 솔루션을 사용하면 블록체인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3~4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일 수 있다. 블록체인 개발자가 많아지면 우리 서비스를 플랫폼으로 만들어 SaaS 형태로 오픈하려고 한다."

민석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서버리스(Serverless) 컴퓨팅 플랫폼 '람다(Lambda)'를 사용하면 서버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높은 수준의 블록체인 서비스를 짧은 시간 안에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솔루션이다."

김종호 해치랩스 대표.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기업이 관심을 가질 것 같다.

민석 "블록체인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개발하는 팀과 접촉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적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려는 기존 기업들도 주요 고객이다."

종호 "중견기업이나 대기업과도 대화를 하고 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중에선 에어블록(Airbloc Protocol) 보안 감사를 했고, 스포카의 캐리 프로토콜(Carry Protocol)에도 도움을 드리고 있다. 이더리움 연구 기업인 온더(Onther Inc.)와도 협업하며 고객 기반을 넓히려고 노력 중이다."

-협업 파트너는 어떻게 정하나.

민석 "킬러 앱(출시와 동시에 시장을 재편할 정도로 인기를 얻는 상품 혹은 서비스)이 나오지 않으면 블록체인도 존재 이유나 가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협업할 때도 해당 프로젝트가 좋은 사용 사례(use case)를 만들 수 있는지 가장 먼저 본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회사가 있을 텐데.

종호 "지금 해치랩스 팀원이 총 6명이고 회사 밖에서 두 분 정도 도움을 주고 있는데, 디사이퍼에서 같이 연구했거나 댑(DApp, 분산 응용프로그램)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다. 개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블록체인을 개발할 때 어떤 점이 불편한지 잘 알고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

모바일 앱이 처음 나왔을 때도 구글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진 않았다. 구글이 인수한 파이어베이스 같은 개발 솔루션 회사들이 많이 존재했다.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들려면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제공할 수 있는 것부터 제공하고 필요한 툴을 점점 붙일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한다."

◇ 블록체인 연구 활발히 이뤄져야…"글로벌 서비스 만들 것"

-단기 목표는 무엇인가.

종호 "블록체인 산업은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내년 1분기까지는 사람들이 쓸만한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가 나와야 한다. 카카오, 라인 등 대기업도 블록체인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데,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나 제품을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돕는 게 목표다. 우리 솔루션을 바탕으로 다양한 블록체인 사용 사례가 나오는 생태계를 기대하고 있다."

민석 "블록체인과 개발을 좋아하는 훌륭한 분들을 많이 모셔오는 것도 0순위 목표 중 하나다. 함께 하고 싶다면 편하게 연락 주셔도 된다."

종호 "앱 솔루션 시장은 포화상태인데, 블록체인은 그렇지 않다. 우리와 함께 한다면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돈보다 소중한 경험이다."

김민석 해치랩스 공동창업자.

-자금 유치 계획은.

종호 "운 좋게도 이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고, 그걸 바탕으로 채용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솔루션 규모를 확장해야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부적인 준비와 시장의 요구가 맞아 떨어질 때 하게될 것 같다.

블록체인 산업에 뛰어든 후 많이 느꼈다. 암호화폐공개(ICO)로 큰 돈 모금한 후 깨지는 팀이 정말 많더라.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돈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자원이지 목표가 아니다."

-블록체인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민석 "블록체인이 만능은 아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기술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건 유의미하다. 역사를 보면 거품도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모든 사람이 외쳤고, 지금은 관련 서비스가 엄청나게 나오고 있다. 개념증명(PoC, proof of concept) 테스트를 하면서 쓸모 있는 기술인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호화폐공개(ICO)라는 새로운 자금 조달 기술이 나오면서 기존 금융 서비스도 바뀌고 있다."

종호 "선을 긋지 않고 열어 두고 생각하고 싶다. 테스트, 실험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테스트를 많이 하다 보면 결국에 답이 조금씩 보일 것이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과거에 얘기했고 현재는 중요한 서비스가 나오고 있는 것처럼 블록체인도 비슷한 길을 갈 것으로 생각한다."

-비전이 있다면.

민석 "내부적으로는 고객사와 파트너가 우리 서비스에 만족하는 것,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똑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게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런 조직을 만들어 보고 싶다.

외국에서 일할 때를 떠올려 보면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와 같은 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질문 하면 뜬금 없다는 소리 나온다. 좋은 문화를 갖추고 성과로 보여주고 싶다."

종호 "좋은 사람들과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유지한다는 건 큰 축복이다. 우리나라 개발자 중 능력 뛰어나고 훌륭한 분들 많은데, 한국 솔루션이 글로벌하게 사용되는 사례는 잘 없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우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