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사진〉 SK그룹 회장이 자신이 가진 SK㈜ 지분 1627만주(지분율 23.12%) 가운데 329만주(4.68%)를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큰아버지인 최종건(1973년 작고) 창업주 가족, 4촌·6촌 등 친척 23명에게 증여했다. 금액으로는 약 9600억원이다(20일 종가 기준). SK그룹은 23일 "최 회장이 20년 전 자신이 경영권을 승계한 데 따른 마음의 빚을 갚는 차원에서 지난 21일 가족들에게 지분을 증여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 약 1조원 지분 가족에 증여

최 회장은 증여 주식 329만주 가운데 절반가량인 166만주(2.36%)를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에게 증여했다. 또 최종건 창업주의 장남이었던 사촌형 최윤원(2000년 작고) 전 SK케미칼 회장 자녀 등 가족에게 49만여 주(0.7%)를 나누어 줬다. 사촌 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그 가족에게 83만주(1.18%), 최종건 회장의 외손자 8명에게 총 30만4000주(0.43%)를 줬다. 최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은 최종건·최종현 회장 동생으로 경영에 참여했던 고(故) 최종관 SKC 부회장과 최종욱(79) 전 SKM 회장 가족 4명에게 13만여주(0.19%)를 증여했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가족모임에서 먼저 지분 증여를 제안했다고 한다. 최 회장은 가족들에게 "지난 20년 동안 형제·친족 경영진들이 하나가 돼 성원하고 지지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SK그룹과 같은 성장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언론에 "지난 5월 최태원 회장 측에서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이번 증여를 마치면 최태원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SK㈜ 지분이 23.12%에서 18.44%로 내려간다. 하지만 최대주주로서 그룹 지배력에는 변동이 없다. 지분이 전혀 없던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2.36%를 갖게 됐다. SK 측은 "이번 증여는 최태원 회장 중심의 그룹 지배구조는 물론 가족 간 계열 분리와 관계없다"고 밝혔다. 증여세 납부까지 고려하면, 최신원 회장이나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그룹 내 다른 계열사 지분을 대거 취득해 분리·독립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승계 때 지지해준 가족에게 마음의 빚"

SK그룹은 창업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형제·4촌 간 마찰이 없었다. 그룹의 모태는 1953년 최종건 창업주가 경기도 수원에 설립한 선경직물이다. 창업 후 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과 함께 회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최종건 회장이 1973년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최종현 회장이 회사를 맡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유공 등을 인수하며 SK의 사세를 키웠다.

그러나 1998년 지병을 치료 중이던 최종현 선대회장이 갑자기 별세하면서 경영권 승계에 대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당시 재계에선 SK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창업주의 장남인 최윤원 전 회장과 사실상 회사를 키운 최종현 선대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 유력 후보였다. 가족 회의 끝에 최태원 회장이 그룹 대표로 결정됐고, 최윤원 전 회장 등 다른 가족들이 이를 지지했다. 최윤원 전 회장은 당시 "최 회장을 중심으로 단합해야 SK그룹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IMF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회사도 이때 "(최태원 회장이) 상속받는 것은 대주주들의 재산이 아니라, 대표권을 위임받는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가족 간 이견은 장손인 최윤원 회장이 조정했다"고 말했다. 최윤원 회장은 2년 후인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후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자녀인 최신원 회장과 최창원 회장이 SK네트웍스와 SK케미칼 등을 경영했지만,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분은 거의 없었다. 또 경영권을 둘러싸고 최태원 회장과 대립 관계도 없었다.

SK 관계자는 "별다른 잡음 없이 그룹을 이끌 수 있었던 데는 친족의 희생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게 최 회장의 평소 생각"이라며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이번에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