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갈등]㉑ 정부가 범부처 태스크포스 꾸려 지원나서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의 독자신용도를 각각 한단계씩 하향한 ‘Baa2’로 조정했다. 독자신용도는 정부 등 외부의 금융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기업만의 신용등급이다.

무디스는 "한전의 독자신용도 하락은 연료비(주로 석탄·LNG) 상승의 부정적 영향과 전기요금 상승 지연,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따른 원자력·석탄 규제 리스크 증가,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 확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디스는 한수원의 올해 평균 원전 가동률은 65~70% 수준이라며, 2011년까지 원전 가동률이 90%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원전 가동률이 낮아지면 한수원의 전기 판매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한전의 원가 구조도 취약해져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 1~3분기 한전과 한수원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3분기 대비 각각 88%와 46% 감소했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한전·한수원의 신용도·재무상태 악화는 해외 원전 수출에서 파이낸싱(자금조달) 역량에 불리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한전·한수원에만 맡기지 말고 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태스크포스를 꾸려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갑 한전 사장(왼쪽)은 올 8월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칼리드 알 술탄 왕립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 원장을 만나 원전 사업 수주 활동을 펼쳤다.

◇ 원자력학회 "원전 수출, 맞춤형 지원패키지 기획이 중요"

일본 도시바는 이번달 150억파운드(약 21조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 ‘뉴젠’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한전은 뉴젠 지분 100%를 인수해 영국 원전 사업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계획이 무산됐다.

우리에게 남은 해외 원전 사업은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폴란드 등이다. 사우디의 경우 올 7월 1400MW급 2기 규모 신규 원전 건설 예비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현재로선 수주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쟁쟁한 원전 선진국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이후 세계 원전 시장은 개별 사업자간의 경쟁이라기보다 국가대항전 성격인 패키지 딜(계약)을 중요시하고 있다. 원자력학회는 "우리 정부는 수출대상국 맞춤형 지원패키지를 기획하고 만들어 나가기보다는 원전 수출 대상국을 쫓아다니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 수입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원전 부품과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도 관심사항이다. 국내 원자력업계는 신규 원전 건설 발주가 끊긴 상황에서 믿을 곳은 해외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자력학회는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원전 부품 공급망이 붕괴될 위험에 빠진 나라를 원전사업 파트너로 선뜻 선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원전 수출을 실현하기 위한 범정부적 지원계획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 중국, 산업 인프라 구축·금융지원 등 파격적 조건 제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올 8월 작성한 ‘중국의 원자력 수출 정책 및 동향’에 따르면 "약 37개국과 원자력 수출 및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대형 원전에서, 소형 원전, 고온가스로 수출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수출 체제 강화의 일환으로 2014년 주요 원전 사업자인 CNNC, CGN, SPIC는 기술개발, 엔지니어링, 건설, 운영 관리, 설비 제조, 금융 등 총 14개 분야 기업과 ‘중국 원자력 발전기술 설비수출 산업연맹’을 설립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남아공, 케냐, 이집트, 체코, 태국 등과 같이 자국의 불안정한 정세와 재정 문제로 원전 도입을 주저하는 국가에 중국이 산업 인프라 구축, 금융지원 패키지 등을 제시하며 공격적인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한전·한수원이 파이낸싱이 문제가 된다면 UAE(아랍에미리트) 같은 전략적 동반자와 함께 원전 수출에 나서는 방법도 있다"면서 면밀한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