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원효(31)씨는 2개월 전부터 매주 금요일 깨끗하게 다려진 셔츠 3장을 집으로 배송받고 있다. 월 5만3000원을 내고 셔츠 정기 배송 서비스를 '구독'했기 때문이다. 입었던 셔츠는 따로 세탁할 필요 없이 새 셔츠가 배송 올 때 반송하면 된다. 김씨는 "매일 입어야 하는 셔츠를 따로 사지 않아도 되고 빨거나 다림질을 할 필요도 없어 편하다"고 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자동차·식재료·의류·생필품을 정기적으로 배달해주는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가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구독 경제 서비스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은 스타트업(초기 창업 기업)만 해도 300여 곳에 이른다. 한 스타트업 투자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해도 스타트업 사업 제안서 100건을 받으면 그중 20여 건이 구독과 관련된 사업이었는데, 올해에는 30~40건이 구독 모델 사업"이라고 말했다. 구독 산업은 글로벌 금융 위기 후인 2010년대 초반 미국에서 처음 생겨났다. 경제 저성장 분위기에서 화장품·면도날과 같은 생활 소모품을 소포장으로 낮은 가격에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인기를 끌었다. 현재 미국·유럽에서 구독 서비스는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기업까지 뛰어들면서 연간 600조원 규모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뭐든지 '구독'할 수 있는 시대

지난 10일 서울 성산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차량 구독 서비스를 내놓은 스타트업 에피카의 홍보 부스 앞에는 50m가 넘는 상담 줄이 생겼다. 에피카는 BMW 미니(MINI)와 협업해 매달 100여 만원(회원비와 차량 사용비를 합산한 가격)을 내면 미니 컨트리맨·JCW와 같은 미니 차량 4~6종을 매달 바꿔 탈 수 있는 '올 더 타임 미니' 서비스를 내달 초 선보일 예정이다. 한보석 에피카 대표는 "국내에서는 차량 구독이 처음이어서 걱정이 됐는데, 행사 당일에만 300여 명이 구독 상담 신청을 해 놀랐다"고 했다.

스타트업 밀리의 서재는 7월부터 월 9900원에 무제한으로 전자책을 볼 수 있는 공격적인 서비스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비슷한 시기에 스타트업 리디북스는 월 6500원에 2600여 권의 책을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 '리디셀렉트'를 내놓으며 경쟁에 나섰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얻자 기존 대형 도서업체 예스24와 교보문고도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술·예술품·취미까지 구독 형식으로 제공하는 이색 서비스도 생겨났다. 스타트업 데일리샷은 한 달 9900원에 제휴 술집에서 매일 술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은 지 1년 만에 누적 회원 수 5000명을 돌파했다. 제휴 술집도 창업 당시 10개에서 120개로 늘어났다. 이 밖에 매월 최저 3만9000원에 3개월에 한 번씩 미술가의 미술 작품을 배송해주는 '오픈갤러리', 월 최대 3만원에 뜨개질·수채화 같은 취미용 소품을 받아 볼 수 있는 '하비인더박스'도 인기다.

구독 경제가 인기를 얻자 대기업이나 금융업체도 뛰어들고 있다. 신한카드는 지난 7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신한페이판'에서 위클리셔츠(셔츠)·미하이삭스(양말)·돌로박스(반려동물용품) 등 8개 스타트업의 구독 상품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내놨다.

◇저성장에 익숙한 젊은 층에 인기

구독 서비스는 혼자 사는 20~30대를 타깃으로 한다. 불황기에 목돈을 들여 상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매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경험을 함으로써 실속을 챙기는 성향이 구독 서비스의 성장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구독 서비스에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 분석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미리 예측하고 보내주거나 사람의 성장에 따른 생활주기를 반영한 신제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로 발전하고 있다. 김도윤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변하고 있는 소비 트렌드를 감안하면 국내 구독 경제 시장도 해외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AI와 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 기술이 구독 경제를 도약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소비자가 기업에 회원 가입을 하고 매달 일정액을 지불하면 정기적으로 물건을 배송받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제 모델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한정돼 있던 구독 서비스가 최근 자동차·명품 의류·가구·식료품까지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