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책은행과 금융 공공기관 사이에서 "희망퇴직을 도입하게 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90년대 초·중반에 입사한 50대 중·후반 직원들이 내년부터 차례로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는데, 4~5년 뒤면 임금 피크를 적용받는 직원이 전체의 10~20% 안팎에 이르게 돼 조직 노령화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이하 '임피제')는 만 55~56세 안팎이 되면 만 60세인 정년까지 해마다 연봉이 일정 비율로 줄어드는 제도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그 인건비로 청년 채용을 늘리라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임피제 적용 직원이 빠르게 늘면서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뿐만 아니라 신용보증기금, 예탁결제원, 기업은행 등 금융권에서 임피제는 큰 고민거리가 됐다. 비금융권에서는 석탄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임피제 대상 직원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는 중이다.

금융 공공기관 "조직이 늙어간다"

금융 공공기관들은 임피제 여파로 조직 노령화, 승진 적체가 나타나고 일반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과도해지면서 본래 업무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산업은행이다. 기획재정부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22년이 되면 산업은행 직원 3200여 명 중 550여 명이 임피제 적용을 받는다. 산업은행 직원 6명 중 1명이 만 55~56세가 넘는다는 뜻이다. 예탁결제원은 지금 임피제 적용 직원 비율이 4%에 불과하지만, 2022년에는 12%까지 늘어난다. 신용보증기금도 작년 9%에서 14%까지 높아진다.

상당수 공공기관은 임피제에 들어간 직원에게 별도 업무를 준다. 국책은행이나 금융 공공기관은 대출 심사 및 사후 관리, 내부 윤리 감시, 연수 교재 개발 등 사실상 현업에서 멀리 떨어진 업무가 대부분이다.

반면 기재부나 감사원은 공공기관이 인건비 총액을 함부로 늘리지 못하게 규제한다. 임피제 직원이 늘어도 일반 직원을 많이 늘릴 수 없는 것이다. 한 공공기관 인사 담당자는 "앞으로는 직원 10여 명인 지방 지점에 2~3명씩 내부 윤리 감시인을 두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승진 적체에 따른 불만도 커지고 현업에 남은 직원들에게 업무가 더 몰리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4~5년 뒤 임금피크제를 거쳐 직원이 대거 퇴직하는 것도 문제다. 단기간에 전체 직원 중 10~20% 안팎이 물갈이되면 숙련된 직원이 턱없이 부족해 공공기관 본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만 경영부터 해소하라"는 반론도

공공기관들은 그 해법으로 '희망퇴직' 도입을 주장한다. 민간과 달리 공공기관에서는 희망퇴직 제도가 유명무실하다. 왜냐하면 기재부 규정 등에 의해 공공기관들은 임피제 적용 직원이 희망퇴직을 할 경우, 회사에 정년까지 남아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연봉의 280~290%)의 절반 이하만 퇴직금으로 주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위원회 등은 정년까지 남아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의 범위 내에서 일정액의 위로금을 더 얹어 줘서 임피제 대상 직원들의 퇴로를 열어주자는 의견이다. 추경호 의원도 "국민 부담으로 운영되는 일부 공기업과 금융 공공기관에서 임피제 부작용으로 인해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대안 마련 대신 비정규직 제로 정책만 집착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희망퇴직 방안과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 등을 통해 청년 일자리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도 많다. 기재부 등은 "희망퇴직 위로금 때문에 추가 재원을 투입할 수는 없고, 조직 효율이 떨어지는 게 우려스럽다면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비용 절감 등으로 인건비를 줄여 그 비용을 충당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가뜩이나 '방만 경영' 지적을 받는 공공기관에 세금 등을 써가며 위로금을 지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와 일부 공공기관은 위로금을 지급하는 희망퇴직 제도를 임금피크 대상자가 폭증하는 향후 4~5년간만 한시적으로 운영하자는 의견을 최근 기재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유보금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서 별도 세금 투입 없이도 조직 효율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도 더 늘리자는 것이다. 반면 기재부는 공공기관 비용 절감 방안이 함께 나와야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금융 공공기관 직원들도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임금피크제

2016년 근로자 정년이 만 60세로 연장되면서,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면 공공기관·기업 등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점을 감안해 정년 연장 대상자들의 임금을 해마다 일정 비율로 깎는 제도다.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고령층과 청년층 간 '일자리 나누기'라는 취지를 살려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로 청년 채용을 늘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