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00달러 탈환론’이 나왔던 국제 유가가 하락세다. 11월 들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12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13.55% 하락했다. 지난 13일엔 WTI가 배럴당 55.69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11월 16일 이후 1년여 만에 최저치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급락세는 예상이 불가능했다. 2016년 2월에 저점(26.21달러)을 찍은 유가는 상승세를 보이며 배럴당 76.41달러까지 올랐다. 미국의 이란제재로 유가가 100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100달러는 ‘오버’라고 할 지라도, 70~80달러는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국제 유가가 다시 하락한 것은 미국이 원유 생산량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10월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1140만 배럴 수준이었다. 이는 사우디 아라비아나, 세계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뒤늦게 감산 협의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하락세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이달 들어 유가가 하락세를 타면서 유가 관련주의 운명도 바뀌었다. 대표적인 고유가 수혜주로 꼽히는 정유주는 이달 들어 하락세로 방향을 바꿨다. 조선주는 국제유가가 최저점을 찍자마자 주가가 하락 마감했다. 유가 하락이 사업수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반면 저유가 수혜주인 항공주는 올랐다.

◇ 저유가시대에 정유주 떨어지고 항공주 오르고

유가가 내리자 정유주 주가는 이달 들어 떨어지고 있다. S-Oil(010950)은 13.71%, SK이노베이션(096770)은 9.36% 하락했다. 유가가 떨어지면 정제마진 폭이 줄기 때문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수입해 정제해서 판매하는데, 유가가 오를 때에는 정제마진을 그만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당장 4분기부터 영업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의 4분기 영업이익은 지난 분기보다 46% 감소한 4555억원으로 예상된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3분기에 1600억원에 달했던 재고 평가이익이 사라지고 오히려 재고 손실을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S-Oil도 상황은 비슷하다. S-Oil의 4분기 영업이익은 지난 분기보다 5.44% 감소한 2985억원으로 예상된다. 다른 사업부문에 비해 유가 하락이 정유사업부문에 미치는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은 유가 하락으로 정유사업부문의 영업이익이 40.7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원민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달부터 고도화설비를 새로 가동했지만 휘발유 가격도 떨어지면서 설비 효과를 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반면 항공주 주가는 올랐다. 이달 들어 대한항공(003490)은 21.67%, 제주항공(089590)은 21.46% 올랐다. 진에어도 21.78% 상승했다. 유가 하락으로 연료 유류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던 지난 3분기에 대한항공이 지출한 유류비용은 8793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늘었고, 이 여파로 104억원의 영업적자를 봤다. 아시아나항공과 진에어의 유류비도 같은 기간 각각 40.9%, 53% 증가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하락하면 연료 변동비에 민감한 제주항공의 주가 반등여력이 부각될 것"이라고 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유가 하락세를 반영하면 대한항공의 내년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13.5% 늘어난 9034억원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유가 하락 장기화되면 ‘조선주’도 위험 신호

고유가 수혜주인 ‘조선주’는 비교적 선방하고 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조선주는 내년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달 들어 상승세를 탔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달 들어 27.18% 상승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각각 8.03%, 9.19% 올랐다. 셰일가스를 앞세운 미국의 LNG 수출량이 증가하고 친환경 선박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LNG선박 수주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국제유가 하락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유가가 올라야 해양플랜트(해저에 매장된 석유, 가스 등을 탐사‧시추‧발굴‧생산하는 장비) 등 해양 프로젝트 발주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WTI가 7%대 급락세를 보이자 14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4-5%대 하락률을 보였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하락이 장기화된다면 내년 중으로 예정돼 있는 해양플랜트 입찰 계획이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2조원 규모의 북해 FPSO 로즈뱅크 프로젝트를 비롯해 인도 릴라이언스 프로젝트, 베트남 블록B 프로젝트 등 대규모 해양플랜트 사업들이 내년에 입찰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