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근로조건 유연화 방안 필요"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상 등으로 인해 근로 조건을 바꾸기 어려운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을 전환해야 하는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정규직 채용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되려 비정규직 고용만 줄였다. 정규직 채용에 따른 부담이 큰 상황에서는 비정규직 사유 제한 등 규제가 강해질 수록 일자리 수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은 19일 발표한 ‘비정규직 사용규제가 기업의 고용 결정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지난 2007년 7월 시행된 비정규직(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대한 법률)법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당시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기간제·파견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의무화했다. 기간제·파견 근로자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사용 기한에 제한을 두겠다는 게 당시 비정규직법의 취지였다.

KDI는 비정규직법 시행 이전인 2005년과 시행 이후인 2007~2011년 50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체의 고용 행태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기간제·파견 근로자 비중이 10%포인트(p) 높아질수록 고용 규모가 3.2%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2년 이상 채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규제가 애초 의도와 달리 전체 채용 규모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 것이다.

보고서는 정규직 일자리 증가 폭보다 기간제·파견 일자리 감소폭이 3배 이상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기간제·파견 근로자 비중 10%p 당 기간제·파견 근로자는 53.3% 감소했고,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은 10.1% 증가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우람 KDI 연구위원은 "기간제·파견 근로자 비중 10%p 당 정규직은 11.5% 늘었지만, 비정규직은 33.9%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노조가 있는 기업일수록 정규직 근로자 채용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않은 무노조 사업체는 기간제·파견 근로자 비중 10%p 당 정규직을 12.6% 늘렸고, 비정규직을 30.2% 줄였다. 기간제·파견 근로자를 48.4% 줄이고, 기타 비정규직은 6.9% 늘렸다.

반면 노동조합이 결성된 유노조 사업체는 기간제·파견 근로자 비중 10%p 당 정규직을 8.2% 늘리는 데 불과했다. 비정규직 감소폭은 48.0%에 달했다. 기간제·파견 근로자 감소폭은 70.3% 였다. 기타 비정규직은 16.4% 늘렸다.

박우람 연구위원은 "노조가 있는 사업체의 경우 그만큼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고, 대신 기간제·파견 근로자를 더 많이 줄이는 형태로 대응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체 업종에 따른 차이는 관찰되지 않았다.

이 연구는 5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2년마다 실시되는 전국 사업체 조사 원자료를 기반으로 했다. 2005년 당시 각각 정규직은 82%, 기간제·파견 근로자는 12%, 기타 비정규직은 6%였다.

KDI는 이 보고서에서 기간제·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 위해 2016년 9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함께 분석했다. 50인 이상 사업체 1000곳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근로조건 변경의 어려움’이었다.

0~10점의 11단계로 나뉜 해당 항목 설문에서, ‘근로조건 변경이 어려워서’는 응답이 1단계 높아질수록 정규직 전환 확률은 0.3%p씩 떨어졌다. 그런데 근로조건 변경의 어려움 정도가 같은 사업체의 경우 노조 유무는 정규직 전환 및 전환 이후 처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박윤수 연구위원은 "노조 유무가 비정규직 규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단계 더 들여다보면 근로조건 경직성이 높기 때문에 비정규직 규제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정규직의 근로조건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곳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기피한다는 의미다.

또 종사자수가 많을수록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사자수가 10% 늘어날수록 전환 확률은 0.8%씩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무기계약직 형태로 정규직 전환을 한다 해도, 기존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을 확률도 종사자수가 많아질수록 낮아졌다. 종사자수가 10% 늘어날수록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확률은 0.6%씩 내려갔다.

박윤수 연구위원은 "유노조, 대규모 사업체일수록 근로조건 변경이 어렵고, 근로조건 변경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더 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DI는 이 같은 분석 결과에 대해 "비정규직 규제만으로 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정규직 근로조건을 유연화하는 방안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