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저임금, 저숙련, 저학력 근로자·자영업자들의 소득을 끌어올림으로써 소비를 진작해 경제 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만성적인 저성장 늪에 빠진 만큼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성적표가 참담하다. 일자리 정부가 펼친 노동 정책이 취약 계층의 일자리부터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고용·투자·성장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정부는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모든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방향성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처참한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것인 만큼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급등, 단기 일자리 급증 불러

최저임금 과속의 부정적 영향은 그간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 등 저숙련 서민층 일자리에서의 취업자 급감으로 드러난 바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월평균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 취업자 증감 폭은 전년 동기 대비 -11만8000명이다. 2013년부터 같은 기준으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했는데, 전년 대비 숫자가 감소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영세 자영업자가 많은 업종인 만큼 인건비 부담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정부는 해당 업종에서의 취업자 수 급감 원인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이 영향을 끼쳤다고 인정한 적이 없다.

그래픽=김성규

취업 시간대별 취업자 수 통계에서 나타난 '단기 취업자 급증, 중·장기 취업자 급감'은 이러한 정부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해 월평균 주 1~17시간 취업자 수 증가 폭(17만3000명)은 역대 최대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13만1000명)보다도 4만명 이상 많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11년(11만5000명)과 비교해도 6만명가량 더 많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한 주 36시간 이상 중·장기 취업자 수 감소 폭(80만1000명)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11년(49만3000명)보다 30만명가량 많은 것이다. 올해 월별로 보면 6월(-500만1000명)과 8월(-136만6000명)의 부진이 특히 심각했다. 해당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주 52시간제 시행(7월)을 앞두고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근로 시간을 단축하면서, '36시간 이상 근로자'가 '36시간 미만 근로자'로 전락한 결과이다.

올 초부터 서울 강남의 한 수제버거집에서 하루 8시간씩 주 2회 아르바이트하던 대학생 전모(21)씨는 두 달 전 아르바이트 근무를 하루만 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고 고민 끝에 일을 그만뒀다. 전씨는 "주 16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는데도 인건비 부담이 벅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저소득층 비중이 높은 단순 노무직 일자리도 같은 기준으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달 단순 노무직 종사자 수는 356만1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9만3000명 감소했다. 단순 노무직 종사자는 지난 4월 1만9000명 줄어든 이후 7개월째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달에는 단순 노무직 중에서도 전자제품 수리, 이·미용업, 마사지업, 간병, 결혼상담 등 소규모 개인 서비스 분야 자영업자가 속한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에서의 감소 폭이 컸다.

◇40대 가장, 남성 취업자도 줄어드는 중

한창 경제활동을 펼쳐야 할 40대의 고용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올해 월평균 40대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1만4000명 줄었는데, 1991년(-26만6000명) 이후 27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심지어 외환위기 때인 1998년(-6만9000명)보다도 감소 폭이 크다. 40대 취업자 증감은 2015년부터 4년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보다 임금이나 근로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남성 취업자 수도 올해 월평균 3000명 증가(전년 동기 대비)하는 데 그쳤는데 외환위기 때인 1998년(-63만6000명) 이후 최저치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의 수십조원대 일자리 예산은 근로시간 초단기화에 따른 전체 근로자들의 소득 감소액에 맞먹는다"며 "민간에서 월급으로 줘야 할 돈을 재정을 투입해 대주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