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제약·바이오 시장에 뛰어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설립 7년여만에 위기를 만났다.

14일 오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고의·중과실’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삼성그룹 내부의 오너 승계와 얽힌 경영 행태를 둘러싼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지배주주와 관련된 사건이나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는 것을 뜻하는 이른바 ‘오너리스크’다.

2015년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등 외빈과 임직원 500여명이 참석해 인천송도경제자유구역 내 제3공장 기공식을 기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둘러싼 논란은 그동안 제약·바이오업계의 부정적 이슈와는 성격이 다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개발·생산하는 약물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다. ‘적자 회사를 흑자로 바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위해 분식회계를 했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앞서 고의 분식회계 정황을 시사하는 삼성 내부문건을 폭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하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 부회장 지분이 제일 많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을 추진했으며,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뻥튀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분식회계 논란은 2015년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부풀리고,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의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가져갔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말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바이오젠과 함께 설립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사로 변경했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 91.2%를 보유해 실질 지배력을 갖고 있었으나 바이오젠이 가진 50%-1주의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지배 관계를 바꿨다.

종속회사에서 관계사로 바꾸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다시 인식해야 했다. 종속회사일 때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적자는 손실이지만, 관계사일 때는 공정가치로 회사를 다시 평가하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가치를 4조8000억원으로 평가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기 자본은 2014년 6000억원에서 2015년말 2조7000억원으로 늘어났고, 회계법인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8조원으로 봤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이 가치를 인정해 합병에 찬성,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됐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전경.

이러한 경영 승계 이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기업으로서 글로벌을 대상으로 하는 의약품 위탁·생산 사업 계획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6년 1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이후 그해 12월 참여연대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처음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한 이후 2년 동안 재감리, 행정소송, 검찰 고발 등의 이슈가 줄을 이었다. 제약 바이오 시장에 이제 막 진입한 초기 기업으로나 투자자로나 악재였다.

게다가 이날 증선위는 과징금 80억원 부과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법인에 대한 검찰 고발, 김태한 대표이사의 해임을 권고했다. 회사는 물론 사업을 이끌 수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삼성바이로직스의 의약품 위탁생산 사업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개발한 바이오의약품을 대신 생산해 공급하는 것으로, 대외적 신뢰도와 빠른 전략 실행이 중요하다. 이를 고려할 때 이번 증선위 결론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의약품 생산·공급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말 첫 바이오시밀러 승인 이후 2년 반만에 원료의약품 12건, 완제의약품 4건 등 제품 기준 총 16건의 글로벌 인증을 획득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3공장을 건립해 세계 최대 의약품 생산 규모인 36만리터 확보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바이오 시장에 정통한 학계 관계자는 "사람 생명을 좌우하는 약을 개발하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우 윤리경영(ethical business)과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최고 경영자가 과거 영위했던 산업 영역처럼 생각해 구시대적 방식으로 이 시장에 접근하려 했던 게 큰 오산"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14일 증선위는 정례회의를 열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후 진술을 들은 뒤 금감원이 감리 후 제출한 제재 조치안을 의결했다. △2012~2014년 삼성바이오에피스 자회사 분류는 '중과실', △2015년 회계기준 자의 해석은 '고의 회계기준 위반'이라는 게 핵심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