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연구자 전환 제외 누구를 위한 IBS인가' '부당한 전환 제외자 즉각 전환하라!'대전 대덕연구단지의 기초과학연구원(IBS) 앞에는 최근 기간제 연구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 네댓 개가 걸렸다. 비(非)정규직 연구원과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구노조 10여 명은 매주 한두 차례씩 아침 출근길에 건물 앞에 서서 "정부가 약속한 정규직 전환 이행하라"며 항의 집회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본원 건물에까지 항의 현수막이 붙었다. 노조 측은 "누구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느냐. IBS의 정규직 전환 기준을 납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BS를 비롯한 공공 연구기관과 정부 출연 연구소들이 비정규직 연구원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갈등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10월 말 산하 연구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밝혔지만 노조의 반발로 1년이 지나도록 마무리 짓지 못하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지고 있는 것이다. 13일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출연연 25곳 중 현재 정규직 전환을 마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당초 완료 목표로 내걸었던 올 3월을 훌쩍 넘긴 데다 연내 전환 완수도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정부는 "각 기관이 알아서 해결하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연구소마다 정규직 전환 두고 갈등

현재 IBS에서 정규직 전환에 반발하고 있는 이들은 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소속 연구원 30여 명이다. 중이온가속기사업단은 오는 2021년 연구 시설 구축이 완료되면 장비를 이용해 연구를 하는 과학자와 필수 운영 인력을 제외한 연구원은 계약이 끝난다. 하지만 지난해 과기정통부가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자 전환 대상이 아니었던 비정규직들까지 "우리도 정규직으로 해 달라"고 주장하며 IBS의 정규직 전환 절차에 제동을 건 것이다. IBS는 현재 이들과 추가 전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IBS는 연구 프로젝트별로 운영되는 기관 특성상 일률적인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IBS는 본원의 일부 연구원을 제외하면 각 대학 교수·연구원들이 특정 프로젝트에 따라 모였다가 연구가 끝나면 원 소속 기관으로 복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난 12일 대전 유성구 기초과학연구원(IBS) 본원 주변 가로수에 기간제 연구원의 정규직 전환 절차를 비판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근 공공 연구기관과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 비정규직 연구원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다른 정부 연구소도 마찬가지다. 항공우주연구원은 올 상반기 73명을 전환할 계획이었지만 일부 반발로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무인비행체사업단과 위성항법사업단 소속 비정규직 20여 명이 최근 "왜 우리는 전환 대상에서 빠졌느냐"며 항의했기 때문이다. 항우연은 두 사업단이 사업을 완료하면 해체되는 조직임을 감안해 전환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정규직들은 "한국형 발사체도 2~3년 뒤 끝나는데 그들은 왜 정규직이냐"며 따진 것으로 알려졌다. 항우연 관계자는 "원장부터 각 사업단 임원들이 정부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추가 예산 지원 등 협의에 나서고 있지만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상반기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지 못한 전자통신연구원 소속 50여 명도 기관이 마련한 전환 기준에 반발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부당한 정규직 전환 대책위원회'라는 단체를 구성해 "차별적인 그룹 나누기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일괄적 추진에 혼란 커져

이 사태는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10월 비정규직 연구원의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밝히면서 촉발됐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70% 전환을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일선 연구소들은 연구소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 추진이 혼란만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한 출연연 책임연구원은 "연구소의 인력 상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능력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비정규직 연구원을 일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가는 연구 경쟁력만 저하되고, 신규 채용을 못 해 자칫 대학 석·박사 연구자들의 정부 연구소 취업길이 막힐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재원 확보도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출연연 비정규직은 전체 직원 1만8734명의 34.6%인 6484명이다. 이들 중 약 70%가 정규직으로 바뀌면 한해 1000억원 가까운 예산이 추가로 든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도 정부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연구기관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기관 내부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정규직 전환 절차가 정부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는 한 정부가 먼저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