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2기 경제부총리 물망에 올랐던 전직 경제부처 장관들은 한결같이 "주력 산업 위기와 경기 침체 우려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더 이상 기업을 적(敵)으로 보지 말고, 잘못된 정책은 방향을 돌리라"고 입을 모았다.

엊그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취임 일성으로 "소득 주도 성장, 공정 경제, 혁신 성장의 3대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말한 것과 온도 차가 크다.

본지는 경제부총리 교체 기류가 본격화된 11월 이후 후보로 거론된 전직 장관급 인사 4명과 익명을 조건으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12일 오전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가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홍남기-김수현 라인'으로 구성된 2기 경제팀에 대해 청와대는 "부총리 원톱 체제로 정책 과제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에선 기존의 반시장적인 정책들을 밀어붙이겠다는 신호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총리 물망에 올랐던 인사들이 던진 메시지들도 시장의 우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①단기 성과보다 장기 기반을 다져라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홍남기 부총리 내정자의 대선배인 인사는 "정부가 비판을 의식해 자꾸 단기 대책에 치중하고 있어 안타깝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고 욕을 좀 먹더라도 경제의 미래를 위해 지금 장기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당 인사가 말한 '장기 기반'은 소득 주도 성장이나 공정 경제 추진이 아니라 주력 산업에 대한 구조 개혁과 규제 혁신을 의미한다. 그는 "(장기 기반 다지기는) 이해 관계자들의 저항이 있더라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②경기 침체 심각, 잘못된 정책 수정하라

거시 경제와 금융에 고루 밝아 막판까지 부총리 물망에 올랐던 전직 장관은 "경기 침체의 파고가 생각보다 높게 올 것 같아 걱정"이라며 "이에 대응하려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가운데 방향 수정이 필요한 것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외부 환경을 무시하고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옳은 판단이 아니다. 현 정부와는 여러 면에서 철학이 달라 같이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기존 정책 노선을 고집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③기업을 '적폐'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라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에 공이 컸던 전직 장관은 "제발 기업을 적으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라"고 주문했다. 기업을 적폐 세력이나 경제 민주화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펴는 정책으로는 경제를 살리기가 어렵다는 게 이 인사의 주장이다.

그는 "말로만 기업을 만나고, 기를 살려준다 해도 기업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지지 않으면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려고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독점 사업자'로 보는 정부의 시각이 국내시장만 보는 협소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 세계 각국은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나라마다 글로벌 거대 기업을 키우느라 올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국내시장 독점'이라며 대기업을 억누르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④주력 산업 급속 쇠락, 새 돌파구 찾아야

금융과 재정 정책에 공히 능력을 인정받았던 전직 장관은 "조선과 해운에서 시작된 주력 산업의 쇠퇴가 급기야 '빅2' 중 하나인 자동차에까지 옮겨왔다. 주력 산업의 쇠락이 너무 빠르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 반전(反轉)의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했다.

외환 위기 당시 대기업 구조 조정 실무 작업을 주도했던 그는 "기업의 쇠퇴는 정부가 단기 대책으로 메울 수 없다"며 "전(前) 정부와 전전(前前) 정부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현 정부 들어 징후가 심각해지는데도 이렇다 할 조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부터라도 주력 산업 위기에 범국가적인 대처가 시급하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