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기계·정유 등 그동안 선방해오던 대표 업종의 실적이 최근 악화하고 있다. 속속 발표되고 있는 3분기 실적을 보면 자동차·스마트폰·디스플레이 등에서 시작한 '불황의 바이러스'가 다른 주력 업종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장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지난 9일까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10대 그룹 60개 상장사 실적을 분석한 결과,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4% 늘었다. 하지만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반도체를 제외한 총 영업이익은 11조295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5% 줄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중 무역전쟁과 고유가, 최저임금 인상 등이 겹치면서 주력 업종들의 실적이 연쇄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며 "국내 산업계의 실적 부진이 상호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불황 도미노'가 일어나는 듯하다"고 말했다.

버티던 석유화학·기계도 곤두박질

상반기까지 선방하던 화학회사들의 수익성은 하반기 들어 급격히 고꾸라지고 있다. 지난 3분기 LG화학은 1년 전보다 24% 감소한 602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은 34% 하락한 5036억원에 그쳤다. 13일 실적 발표를 하는 한화케미칼의 영업이익도 35% 안팎 감소가 업계 전망이다. 석유화학은 우리 전체 수출(상반기 기준)의 8.4%를 차지하는 주력 업종이다. 국내 화학업계 영업이익은 2분기만 해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미·중 무역 전쟁과 고유가라는 이중(二重) 악재를 만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수요가 줄면서 제품 가격은 떨어지고 핵심 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상승하는 설상가상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화학업체 관계자는 "당분간 고유가로 매출액은 늘지만, 공급과잉으로 영업이익은 계속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력 업종인 기계산업에도 불황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 9월 국내 공작기계(工作機械) 수주액은 228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2487억원)과 비교해 8% 줄었다. 2015년부터 계속된 상승세가 꺾인 것이다. 생산설비의 부품을 가공하는 기계산업의 기초인 공작기계의 감소는 결국 설비 투자 감소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공작기계산업협회 측은 "철강과 전기·전자, 자동차 업종에서의 주문이 크게 줄었다"고 분석했다.

자동차 부품 업종의 불황도 계속되고 있다. KCC의 영업이익은 작년 대비 31%, LG하우시스는 77% 줄었다.

"주력 업종 수익성 계속 나빠질 듯"

우리 주력 산업의 수익성은 내년에도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급등했던 반도체 가격이 정상화되고,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반도체의 가격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10% 떨어지고, 미진한 자동차 회복세로 자동차 업종의 영업이익이 10% 떨어질 경우 내년 비금융 상장기업의 영업이익은 올해 대비 4.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반도체 D램 가격이 10% 하락에 머무는 등의 조건에서는 내년 비금융 상장기업의 매출액은 올해 대비 4.1%, 영업이익은 1.9%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마저도 올해(추정치)와 비교해 매출액은 1.1%포인트, 영업이익은 8.0%포인트 하락하는 것이다.

김수진 수석연구원은 "반도체 업종의 영업이익은 2017년에 전년 대비 2배 늘어난 이후, 2018년은 증가율이 둔화되고, 2019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제조업 분야에선 실적이 좋아질 요인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수익성 하락은 투자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최근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선진국 기업과 비교해 떨어진다"며 "수익이 줄어 투자 여력이 없어지면, 다시 매출과 영업이익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