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통혁신]④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거주하는 김수영(41)씨는 근교 쇼핑몰 ‘어바인 스펙트럼’ 내 노드스트롬(Nordstrom) 백화점에서 약 15만원을 주고 재킷을 구매했다. 집에 돌아와 입어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불을 받으려면 1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김씨는 15분 떨어진 멜로즈 거리의 ‘노트스트롬 로컬’을 찾았다. 이곳에선 전국 333개 백화점·아웃렛에서 구매한 상품을 환불받을 수 있다. 김씨는 즉석에서 재킷을 환불받았다. 온라인에서 구매한 상품도 이곳에서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김씨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LA 비버리힐즈 인근에 쇼룸형 매장을 낸 ‘노드스트롬 로컬’. 기존 백화점 47분의 1 수준이다.

미국 백화점들은 파산한 시어스처럼 고객들에 외면받지 않기 위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소비자 밀착형 서비스를 통해 고객 만족도를 올리거나 아마존과의 협업을 통해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비버리힐즈 인근 멜로즈 패션거리에 위치한 ‘노드스트롬 로컬’을 찾았다. 노드스트롬은 미국에서 약 7.1%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고급 백화점이다.

옷을 입어볼 수 있는 탈의실. 재고가 없어 옷을 바로 구매할 수는 없다. 오후 2시 전에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매장에서 상품을 받을 수 있다.

노드스트롬은 지난해 10월 이곳에 84평 규모의 ‘실험 매장’을 열었다. 기존 백화점의 47분의 1 수준인 면적에 샘플로만 구성된 쇼룸형 매장이다. 탈의실 8곳이 마련돼 있지만 재고가 없어 바로 구매는 할 수 없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다음 매장에서 물건을 받아 착용해보고 맘에 안들면 그 자리에서 환불하는 ‘드랍앤고(Drop&Go)’ 정책을 도입했다. 온라인에서 오후 2시까지 주문하면 매장에서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이 곳엔 스타일리스트, 재단사가 상주해 쇼핑객들이 원하는 맞춤옷을 제작하거나 수선할 수 있다.

프랭코 비잘 노드스트롬 세일즈 매니저는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객 만족도가 높다"며 "온라인에서 구매한 상품을 바로 픽업할 수 있는 시스템도 고객들이 상당히 좋아한다"고 했다.

스타일리스트·재단사가 상주해 쇼핑객들이 원하는 맞춤옷 제작이나 수선도 가능하다. 미국 소비자들은 세탁소에 대한 불신이 커서 수선을 맡기길 꺼려한다. 백화점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믿고 맡길 수 있다.

네일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드스트롬 로컬. 고객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이러한 노력은 고전하는 미국 백화점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노드스트롬은 주요 백화점 중 유일하게 매출이 증가했다. 2013년에는 매출 122억달러(13조7000억원)를 기록했으나 5년후인 2017년에는 매출 151억달러(17조원)로 증가했다. 만족도를 높여 고객이 계속 백화점을 찾도록 만든 결과다.

이 회사는 온라인 패션 스타트업 회사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진행 중이다. 노드스트롬은 온라인 패션 스타트업인 트렁크 클럽(Trunk club)을 약 4000억원에 인수했다.

트렁크 클럽은 큐레이션 패션회사다. 고객이 몇몇 질문에 답하면 스타일리스트와의 상담 등을 통해 취향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정 주기마다 패션과 악세사리 상품을 박스에 담아 배송해 준다. 월 2만원 정도의 스타일링비를 내면 각 회원에게 맞는 의상을 무료로 보내주고 회원이 그 의상 중에 맘에 드는 것을 고르면 앱을 통해 결제하도록 한다.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스티치픽스와 유사하다.

◇‘악마와 거래’로 불린 협업...아마존 환불대 만들어 고객 방문 늘린 ‘콜스’

적과의 동침에 나선 백화점도 있다. 콜스(Kolh’s) 백화점은 작년부터 아마존과 파트너십을 맺어 시카고 및 로스앤젤레스 매장에 아마존 환불 접수대를 만들었다. 이 서비스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고객들의 방문이 크게 늘어나는 효과를 얻었다.

콜스백화점 안에 만들어진 아마존 환불접수대. 이 백화점은 최근 고객들의 매장 방문을 늘리기 위해 아마존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아마존에서 콜스 드롭오프(Kohl 's Dropoff)를 선택하면 고객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콜스 백화점 매장을 알려준다. 이 곳을 선택한 후 매장을 방문해 반품하면 된다. 물건을 반납하면 콜스 백화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25% 할인쿠폰을 준다.

이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마존의 리턴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콜스 백화점 방문객은 8.5% 증가했다. 특히 새로운 고객들이 유입되는 비중이 높았다. ‘악마와의 거래’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두 회사 모두 시너지를 낸 것이다.

나이키가 지난달 LA 멜로즈 패션거리에 새롭게 문을 연 매장. 입었던 옷이라도 한달 내에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하면 물어보지도 않고 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고객접점과 만족도를 높인 오프라인 매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9월 LA 멜로즈 패션거리에 매장을 낸 나이키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옷과 신발을 구매하고 여러 번 착용했어도 한 달 안에 이유없이 환불해 주는 시스템이다.

한국에서는 고객이 입던 옷이나 더렵혀진 옷의 환불을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이키는 이러한 발상을 전환했다. ‘30일 착용해보고(30 days trial)’ 서비스는 "옷과 신발을 착용해 본 후 한 달 안에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면 묻지도 않고 환불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 물건을 구매한 후 나이키 앱을 다운로드하면 자판기에서 원하는 양말을 골라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즐거운 ‘경험’도 선사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마존은 세상에서 가장 고객 지향적인 회사라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며 "아마존 리턴센터를 만들거나 맞춤형 옷을 제공하는 등 기존 유통업체가 전략을 새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