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숙박 물가상승률 2.4%…상반기대비 0.3%p 하락
자영업자 "인건비 등 원가 오르는 데 불황에 수요 위축"

서울 명동의 한 식당가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경기도의 한 대학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 모씨(58)는 요즘 가게 상황을 묻는 질문에 "앉아서 말라죽는 상황"이라며 "매일 속이 탄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몇달 사이 근방에 새로 문을 연 식당들이 자동주문판매기를 도입해 가격 파괴에 나서고 있는데, 아르바이트생들을 쓰고 있는 박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대응 여력이 떨어져 손님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1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문을 연 베트남 전문 음식점은 쇠고기 쌀국수 한 그릇에 3900원에 판다. 주문은 자동판매기로 받고 주방에선 1~2명만 일한다. 한 달 전 문을 연 부대찌개 전문점도 마찬가지다. 4900원에 부대찌개 한 그릇이 나온다. "프랜차이즈 외식 업체들이 판매 가격을 올린다는 데 일반 자영업자 입장에서 딴 나라 이야기"라며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여름 폭염 채소값 급등에도 되레 가격 깎기 경쟁만 벌어지고 있다"고 박씨는 한 숨을 내쉬었다.

올 하반기 들어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인서비스 물가는 내수 경기 상황과 직결되는 데다 인건비 비중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또 개인서비스를 구성하는 업종들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는 점도 또다른 특징이다. 결국 개인서비스 물가 둔화는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늘어난 원가를 가격에 전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2.2%로 9월(2.4%)보다 0.2%포인트 내려갔다.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2015년 1.9%였다가 2016년 2.7%, 2017년 2.5%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1~6월) 상승률은 2.4%였다. 2년 6개월 정도 2.4~2.7%를 기록하던 개인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2%초반대로 떨어진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과 최저임금 급등을 이유로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간서비스 물가 둔화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격을 거의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음식 및 숙박’ 물가 상승률도 상반기보다 0.3%p 하락

통계청은 서비스 물가를 집세, 공공서비스, 개인서비스로 분류한다. 개인서비스 물가는 사실상 민간서비스 물가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16.4%)에도 개인서비스 물가가 둔화됐다는 것은 민간 수요가 위축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개인서비스 물가는 외식서비스와 비외식서비스로 나뉜다. 10월 외식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2.5%로 상반기(2.7%)보다 0.2%p 낮았다. 비외식서비스 물가 상승률도 올 상반기 평균(2.2%)보다 낮은 2.0%를 기록했다.

지출목적별 물가지수를 따져봐도 서비스 물가의 정체 상황은 확연하다. ‘음식 및 숙박’ 전년대비 물가상승률은 올 상반기 2.7%에서 9~10월 각각 2.4%로 내려갔다. ‘기타 상품 및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올 상반기 0.4%에서 3분기(7~9월) 0.8%로 올랐다가 10월 들어 다시 0.5%로 떨어졌다.

◇ 최저임금 인상에도 가격 인상 못하는 자영업자 현실 반영

2001~2003 최저임금을 60% 가량 올린 헝가리의 경우 기업들이 판매 가격을 인상해 그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상당 부분 전가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당초 전문가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민간서비스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했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서비스 업종 특성상 인건비 등 비용 상승이 판매 가격 인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민간서비스 물가는 올 하반기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관계자는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 등에도 불구하고 민간 수요가 견조하지 못해 자영업자들이 판매 단가를 올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그만큼 자영업자들의 이익 몫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동성이 심한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지수인 근원물가지수의 상승률은 10월 전년동월대비 0.9%로 올해 들어 가장 낮았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해 상반기 1.3%였다가 7~9월 각각 1.0%로 둔화된 뒤 지난달에 0%대로 주저앉았다. 2016년(1.9%), 2017년(1.5%)보다 낮은 수준이다. 근원물가는 민간 수요 압력을 나타내는 척도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저소득층 소비 수요 증가나 인건비 상승에 따른 가격 전가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오석태 한국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통상 개인서비스가 물가에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인데, 근원물가지수에선 40% 정도로 올라간다"며 "최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높은 산업에서 늘어난 원가를 전가시키지 못한 것도 근원물가가 낮게 유지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다른 나라들의 경우 기업들이 제품, 서비스 등의 판매 가격을 올려 그 부담을 상당 부분 소비자들에게 전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페레트 허러스토시(Peter Harasztosi) 유럽위원회 통합연구센터(JRC) 연구원 등은 2017년 발표한 ‘누가 최저임금의 비용을 대는가?(Who Pays for the Minimum Wage?)’ 논문에서 2001~2003년 60% 가량 최저임금을 올린 헝가리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최저임금 인상의 80% 정도가 판매 가격 인상으로 전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슬로바키아 중앙은행이 2010~2013년 헝가리를 포함해 중동부 유럽 8개국의 사업체 단위 자료를 이용해 지난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에 기업들은 판매 가격 인상, 인건비 외 비용 삭감 등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