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11일 청와대에서 가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경제 사령탑이고 '하나의 팀'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그동안 부동산과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등 현 정부 핵심 정책에 관여해 왔다. 그런데 간담회에선 여러 차례 "나는 뒷받침하고,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왕수석'에서 '왕실장'으로 승진이라는 주변 시선을 의식한 듯 의식적으로 몸을 낮춘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책임론이 거론되자 사과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경제 비전문가'라는 여권 내 비판에 대해서도 "역대 정책실장 중에도 경제 전문가 아닌 분들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 공정 경제 등 정부의 3대 정책 기조에 대해선 "전혀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다만 "속도와 균형에 대한 염려에 대해선 알고 있다"며 미세 조정 가능성은 열어뒀다.

◇金 "나는 투톱 아니다"

김 실장은 우선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정책 갈등을 의식한 듯 '경제 투톱'이 아닌 '원팀(one team)'을 강조했다. 김 실장은 "정책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으로서 경제부총리의 일을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이라며 "더 이상 '투톱'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수현(왼쪽)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11일 향후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김 실장은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 등 3대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 “전혀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부총리가 '혁신 성장', 장 전 실장이 '소득 주도 성장'을 맡았던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김 실장은 "포용 국가에 대한 지휘봉은 경제부총리가 잡고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저는 내각과 청와대 수석들이 그런 일을 하도록 뒷받침하며 전체 국정 과제를 조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경제부총리 뒤에서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대통령과 물리적 거리와 친밀도에서 앞서는 김 실장에게 정책 권한이 쏠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기 경제팀 기조 계승

김 실장은 소득 주도 성장 등에 대해선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 공정 경제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김 실장 후임인 김연명 신임 청와대 사회수석은 "분배 역할을 강화하는 것을 챙겨보겠다"고 했다.

'김동연-장하성' 1기 경제팀에 대한 평가를 묻자 김 실장은 "큰 틀의 경제 방향을 잘 잡아줬고, 큰 방향 속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덕담(德談)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정책 기조의 계승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실장은 "장 전 실장이 떠나면서 저에게 빨간 주머니, 파란 주머니를 주고 갔다. 어려울 때 열어 보라고 했다"고 했다. 실제 주머니를 준 것인지, 은유적 표현인지 추가 설명은 없었다. 다만 "지난 1년 6개월간 진행된 정책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고 했다.

◇"부동산 오른 건 대세 상승기 탓"

과거 자신이 주도했던 부동산 정책이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 김 실장은 "개인 책임에 대해선 언제든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사실 부동산 시장은 주기성을 가지고, 전 세계 부동산 시장도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겪었다"며 "공교롭게 노무현 정부, 또 사실은 박근혜 정부 후반기부터 상승 주기에 들어섰다"고 했다. 정책의 문제점보다는 시기상 부동산 대세 상승기였다는 데 무게를 돌린 것으로 해석된다. 김 실장은 "하여튼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있고 국민의 염려를 잘 알고 있다"며 "불안한 여지가 발생하면 선제적으로 대처하겠다"고 했다.

김 실장은 '경제 비전문가'라는 비판에는 적극 대처했다. 그는 "제가 경제학을 공부했다, 안 했다 하는 방식의 논쟁은 적절하지 않다"며 "청와대에도 이미 경제 전문가들이 있다. 경제수석, 경제 보좌관 등 경제 전문가들이 내각과 함께 일하도록 조율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 역시 사회정책 전문가인 김 실장에게 경제보다는 경제와 사회정책의 '통합'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자신이 사회수석 시절 맡았던 탈원전과 부동산 정책은 경제 관료 출신인 윤종원 경제수석에게 이관하기로 했다. 다만 최종 지휘는 김 실장이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경제수석이 더 폭넓은 시각에서 정책을 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윤 수석이 자신의 상관인 정책실장이 추진했던 정책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울 거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