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기 경제정책 사령탑으로 지명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공직 사회에서 ‘근면성실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사무관 시절부터 ‘일을 맡기면 소리없지만 무조건 성과를 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기획원, 기획예산처 출신인 홍 후보자는 예산실 사무관들의 출세코스로 인식되는 예산실 총괄 서기관을 거쳤다. 홍 후보자는 재정 예산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홍 후보자의 이력을 보면 근면성실한 그의 장점이 드러난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동시에 박봉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후 박 장관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보좌업무를 계속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 변양균 실장으로 교체된 후에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 대변인으로 당시 박재완 장관을 보좌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국정기획비서관 등으로 일했다. 기재부 안팎에서 홍 후보자를 ‘장관들의 남자’로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홍 후보자가 주요 정책을 기획하거나 실무적으로 추진해본 경험이 많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예산 파트에서만 보냈기 때문에 거시경제 흐름을 분석하거나 관련 정책을 기획·추진한 경험이 없다. 국제금융시장의 복잡한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업무를 한 경험도 없다.

투자와 고용, 생산의 동반 악화로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고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홍 후보자가 한국 경제의 항로를 이끄는 선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장관 보좌 경험 많은 예산통…무상복지 공약 공격수 역할도

1960년 강원도 춘천생(生)인 홍남기 후보자는 춘천고,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장학생으로 한양대에 입학했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희남 KIC(한국투자공사) 사장, 육동한 강원연구원장(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과 함께 고시반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샐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행시 합격 후 경제기획원(EBP)에 배치된 홍 후보자는 예산편성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조경규 전 환경부 장관,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그와 예산실 생활을 함께 한 행시동기들이다. 그는 과장급으로 승진한 이후 대부분의 경력을 청와대 등에서 채웠다.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인 박봉흠, 변양균 정책실장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후 주미 대사관 재경관을 거쳐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사무처장과 대변인, 정책조정국장 등을 거쳤다.

정책조정국장 재임 당시 김동연 2차관 주도로 정치권의 무상복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된 복지TF 간사를 맡았다. 당시 기재부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총선 복지공약 재원이 268조에 이른다는 내용을 발표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공개 경고를 받았는데, 이 때 실무 책임자였다. 복권위 사무처장 때에는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연금복권을 만들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청와대로 옮겨 국정기획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등으로 일하며 허태열, 김기춘 비서실장 등을 보좌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캐치프라이즈가 만들어질 때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으로 옮겨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차관 재임 시 언론브리핑에서 창조경제 등 정부의 과학정책 진정성을 언론이 몰라준다며 눈물을 흘린 일화도 있다.

◇ 대통령·국무총리 신임 두터워…"만기친람형 리더십 우려도"

세종시 관가에서는 홍 후보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주목을 받은 계기로 이낙연 국무총리의 정례 주례보고를 주목하고 있다. 이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주요 국정현안을 보고하는 주례보고에서 홍 후보자는 총리 보고내용을 브리핑하는 역할을 했다. 브리핑 내용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해당 부처 장관들에게 전달하는 일도 홍 후보자의 역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 주례보고에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도 배석한다. 굵직굵직한 국정현안에 대한 기초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석한 홍 후보자를 정부 경제정책 사령탑에 배치했다는 게 관가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2기 경제팀에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의 불협화음 등 1기 경제팀에서 나타났던 문제점이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한 정부 고위 관료는 "홍 후보자는 자기 목소리를 외부에 내는 것보다 묵묵히 소임을 수행하는 게 공직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애정을 갖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내는 데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 후보자가 현재의 경제난국을 헤처나가는 돌파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우선 그는 정책 실무를 책임지고 이끈 경험이 많지 않다. 기재부 관료들이 정책 실무 능력을 가장 집중적으로 배양하는 과장 보직을 하나 밖에 하지 못했다. 2002년 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예산실 예산기준과장을 맡은 게 유일하다.

공직 실무 경험은 예산 편성에 국한됐다. 거시경제 정책 뼈대를 만드는 경제정책국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전혀 없고, 국제·국내 금융과 관련된 업무를 한 경험도 없다. 국장급으로 근무할 때는 아주 세부적인 실무적인 일까지 관여하려고 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업무 스타일로 ‘모시기 힘든 상사’라는 평가도 받았다. 자칫하면 기재부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청와대 주도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무추진 부처로 위상이 제한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홍 후보자가 거시·금융정책 관련 경험이 없고, 홍 후보자에 대한 시장의 정보가 너무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시장의 수용성 등에 대한 고민없이 청와대가 기획한 정책을 집행하는 방향으로 기재부의 역할이 제한되면 정책 추진에 대한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