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찾은 경기도 반월·시화공단. 이곳에서 만난 A기계공업사 사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30년째 공장을 운영했다는 그는 "지금쯤 내년 물량을 확정해야 하는데, 일감이 작년의 30% 수준"이라며 "올해도 기계 9대 중 4~5대를 겨우 돌렸는데, IMF 외환 위기 때도 이렇진 않았다"고 말했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생산 금액을 물가를 적용해 환산한 '중소기업 제조업 생산지수'가 올 들어 글로벌 금융 위기였던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 9월 중소기업 생산지수는 97(2015년=100)로 1년 전보다 13.9% 감소했고, 올해 2월부터 8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1~9월 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줄면서 2009년(-8.8%)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1~9월 대기업들은 0.4% 감소에 그치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보다 10배 이상의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 2차 협력업체 내부. 한때 70명이었던 직원이 27명으로 줄고, 생산 물량도 30% 정도 줄어 공장이 썰렁했다.

실제 본지가 자동차·전기·전자·제지 등 다양한 업종의 중소 제조업이 모여 있는 반월공단, 시화공단, 남동공단, 주안산업단지 등을 둘러보니 중소업체들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시화공단·남동공단에는 '공장 임대·매매'가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일감이 없어 직원 한두 명만 서성이는 공장, 사장이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공장들도 많았다. 윤경태 안산상공회의소 과장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등으로 힘들어하는 기업들이 고용을 포기하거나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찾아간 인천 남동공단.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2차 협력사 B사는 올해 금형 10개를 1차 협력사에 반납했다. 2013년 70명이었던 직원은 작년 32명, 올해 27명으로 줄였다. 목장갑을 끼고 작업을 하던 이 회사 사장은 "오르는 인건비와 떨어지는 단가 때문에 만들수록 손해"라며 "직원들 최저임금 맞춰주느라 사장인 나는 지난달에 150만원을 월급으로 가져갔지만 내년엔 어떨지 상상만 해도 막막하다"고 말했다. 사장실 한쪽에는 간이침대와 이불이 놓여 있었다. 그는 "작년에 공장을 팔려다가 직원들이 '상여금을 포기하겠다"며 붙잡아 그만뒀는데, 이젠 더 버틸 힘이 없다"며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대출 있고, 매출이 감소하는 회사는 아예 지원을 받을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내년, 후년이 더 공포스럽습니다."

지난 1일 인천 남동공단에서 만난 자동차 부품사 사장은 "최저임금이 더 오르는 내년, 주 52시간 근로를 적용받는 후년은 앞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매출의 40%를 차지하던 인건비가 올해 60%까지 올랐다"며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10.9%가 인상되니 인건비가 과거 2배 수준(80%)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든다"고 말했다.

본지가 만난 상당수 중소기업은 올해도 힘들지만 내년, 후년이 더 암울하다고 말했다. 올해 16.4%가 오른 최저임금이 내년에 추가로 10.9%가 오르면서 2년 만에 29%가 오르는 데다 2020년부터는 300인 이하 기업들도 주 52시간 근로를 지켜야 한다. 직원 22명을 두고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C사는 작년 직원 인건비로 1인당 240만원이 나갔지만, 올해는 4대 보험료를 포함해 308만원이 나간다. 내년엔 358만원이 예상된다. 2년 만에 인건비가 50% 오르는 것이다. C사 대표는 "후년에 주 52시간까지 적용되면 적자를 면키 어려워진다"면서 "남들처럼 베트남 같은 해외로 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천 주안 국가산단의 자동차 내장재 생산업체 D사의 사장은 "올해 매출은 15%, 수익은 50% 가까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화공단·인천남동공단 등에선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식당·은행 등 주변 상권에서도 비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화공단에서 공장 직원들을 상대로 구내식당을 18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정용씨는 "조만간 식당을 접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40평 규모의 식당은 2년 전만 해도 300명이 점심때마다 찾았지만 지난해 200명, 올해는 130명으로 줄었다. 한 끼 4500원을 받아 겨우 임대료에 재료비 빼고 수익을 남겼다. 이씨는 "작년 3명이던 주방 이모 중 2명을 내보냈다"며 "5~6년 전만 해도 잔업·특근하는 저녁 손님까지 있어 장사할 만했는데 지금은 잔업·특근하는 손님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시화공단 지점 관계자들은 요즘 눈만 뜨면 "어디가 부도났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원래 공단 내 은행 지점이나 센터들은 최고의 승진 코스로 선망의 근무지다. 거래 규모가 커서 은행들 간 대출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요즘 시화공단은 은행 지점장들의 무덤"이라며 "일부 은행은 지점 폐쇄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공장 매물이 쌓이면서 인근 부동산도 거래가 끊겼다. 시화공단에서 만난 부동산중개인 윤석장씨는 "올 들어 나온 공장 매물이 작년의 1.5배 수준"이라며 "매출이 반 토막 나거나 폐업한 공장들이 많아 매물은 쌓이는데 사려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불황에 최저임금, 주 52시간 등 인건비 상승까지 겹치면서 영세기업들은 사지로 내몰리고 다수 기업들은 자동화 설비를 늘리고 중국·베트남 공장으로 옮기고 있다"며 "자동차·철강·조선 등 주력 제조 산업들이 잇따라 흔들리면서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가장 먼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