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6일부터 6개월 간 유류세를 15% 인하하기로 한 가운데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정유업계가 안도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떨어질수록 유류세 인하에 대한 소비자 체감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상쇄될 경우 비난이 자신들에게 집중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광진구 한 주유소

2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 추정 값은 배럴당 75.66달러로 연중 최고치였던 10월 4일 84.44달러 대비 10.3% 하락했다. 올해 2월부터 쉬지 않고 오르던 국제 유가는 10월 중순부터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꺾이면서 휘발유‧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 가격 상승세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9월 이후 국내 휘발유 값은 매주 L당 7~12원씩 올랐는데, 10월 넷째 주 휘발유 가격은 전주 대비 3.5원 올랐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체들은 10년 만에 추진되는 유류세 인하를 앞두고 국제유가 상승세가 꺾이자 안도하는 모양새다. 정유사들은 국제유가 등락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정제마진이 확대되는 것을 원한다. 국제유가보다는 정제마진이 얼마나 크냐가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비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한 마진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를 앞둔 현 시점에서는 누구보다 국제유가가 떨어지길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유가가 오를 경우 정부가 10년 만에 추진하는 유류세 인하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했음에도 국제유가 상승으로 휘발유 값이 오르자 정유사와 주유소에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진 바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에 따르면 2008년 이뤄졌던 유류세 인하는 국내 휘발유 값 인하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동안 유류세를 10% 내렸지만, 국내 휘발유 값은 오히려 3% 올랐다. 당시 국제유가는 같은 기간 동안 7.8% 상승했다.

정유업계는 유류세 인하 효과가 조기에 나타날 수 있도록 직영 주유소를 통해 오는 6일부터 가격을 인하할 계획이다. 국내 유통기간이나 주유소 재고소진 기간을 고려하면 11월 중순부터 유류세 인하 효과가 나타나게 되지만, 시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초반 손해를 감수하고 유류세 인하분을 바로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유류세 인하가 종료되는 내년 5월 6일 이전 출고 제품에 유류세 부과 가격을 반영해 손실을 회복할 계획이다. 정유사 직영 주유소는 전체 주유소의 10% 수준이다.

이번 유류세 인하 조치로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세금은 각각 123원, 87원씩 내릴 전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갑자기 국제유가가 올라서 휘발유 값이 123원 만큼 안 떨어지게 되면 세금 인하 효과가 어디갔냐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에 11월 국제유가 흐름이 중요하다"며 "평소에는 국제유가 등락이 중요하지 않지만, 지금은 국제유가가 떨어지는 것이 무조건 좋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