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아끼려다 7조원을 퍼부어야 하는 희한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하명신 부경대 교수)

1년 8개월 전 당시 국내 1위, 세계 7위였던 한진해운이 파산선고를 받았다. 한진해운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5000억원 자구안을 제시했지만, 당시 정부는 8000억원을 하한선으로 제시했다. 결국 3000억원 차이로 한진해운은 2017년 2월 파산 처리됐다.

한진해운 대신 정부는 당시 세계 15위였던 현대상선 회생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직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대해 신주인수권부사채·전환사채 매입 형식으로 1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당초 8000억원을 지원하려다, 현대상선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판단에 따라 2000억원 추가 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처음이 아니다. 한진해운 파산 처리 후 4차례에 걸쳐 2조원 가까이 지원해왔다. 2017년 3월 정부기관인 한국선박해양은 현대상선 선박 10척을 8500억원에 매입해줬다. 같은 해 12월엔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산업은행이 780억원을 태웠다.

해수부 관계자는 25일 "지금까지 2조원을 투입했고, 향후 추가로 5조원 정도 더 지원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급 보증·항만 지분 투자 등 다양한 형식을 띠고 있지만, 결국 최악의 경우 국가기관들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민 부담으로 7조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지원 속에서도 해운업 불황이 지속되고, 우리 해운사의 경쟁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막대한 지원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현대상선은 올해 상반기 3699억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2593억원)보다 43% 늘었다. 지난 2분기까지 1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이 기간 누적 적자만 1조8600여억원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지원받은 돈은 대형 선박 등을 매입해 경쟁력을 키우는 데 쓸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선사들은 몸집을 불리면서 현대상선 등 중하위권 선사들을 고사(枯死)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세계 1~3위인 머스크, MSC, CMA-CGM은 401만TEU, 325만TEU, 263만TEU급 선복량(적재 능력)을 갖춰 체급 격차를 키우고 있다. 해운업에서는 선복량이 많을수록 그만큼 수익률이 높다. 현대상선은 41만TEU로 1위 머스크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글로벌 선사들이 규모의 경제로 앞서가는 상황에서 해운업 경기도 좋지 않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2017년 기준 301.6%로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반면, 실적 회복은 여전히 요원하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도 지난 8월 "2020년 2분기는 돼야 흑자 전환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조차 장밋빛 전망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중 무역 전쟁 등으로 세계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 데다, 현대상선이 채권단으로부터 지원받은 용선료 할인 기한도 1년여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해운업을 살려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 좀 더 전략적인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하명신 교수는 "지원 금액 산정의 근거는 무엇인지, 현대상선이 자립한 이후 지배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정부가 투명하게 밝히고 국민적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