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일본으로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3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앞으로 5년간 국내외 전 사업 부문에서 50조원을 투자하고 7만여 명을 채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화학과 유통을 양대 축으로 매년 평균 10조원을 지속적으로 투자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신규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기로 했다. 신 회장의 구속 수감 여파로 지난 8개월간 올스톱한 투자 엔진이 빠르게 재가동될 전망이다.

신 회장은 23일 오전 3시간여 고위 임원 회의를 열고 이 같은 투자 및 고용 계획을 확정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불확실한 미래,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어려운 환경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50조 중 35조원(70%)을 국내에서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둔화된 경영 활동을 빠르게 정상화하기 위해 첫해인 내년에 12조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과의 '빅딜'로 석유화학 기업을 인수한 2016년 투자액 11조2000억원을 상회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롯데 관계자는 "8조원대이던 연간 투자 규모가 20% 이상 커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재계 5위이지만 투자액으로만 보면 4위가 된다.

◇화학·건설에 20조원 투입

향후 5년간 투자가 집중되는 부문은 화학·건설 부문이다. 전체 투자 규모의 40%에 달하는 20조원이 투입된다. 그룹의 확실한 현금 창출원으로 자리매김한 화학 분야를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롯데는 인도네시아에서 4조원을 투입해 초대형 나프타 분해 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신 회장의 수감 여파로 부지 매입 이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사업 추진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추진하는 에탄 분해 시설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는 여수·울산·대산 플랜트 설비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원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 회장에 대한 수사로) 2년 전 미국 화학 기업 액시올사 인수를 포기해 글로벌 화학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며 "향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e커머스에 집중

유통 부문에서는 이커머스(e-commerce)에 집중할 계획이다. 총 투자금의 25%인 12조5000억원을 투입해 온라인 사업을 확대하고, 고용 유발 효과가 높은 복합 쇼핑몰 개발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롯데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과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며 "특히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유통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 日 시작으로 글로벌 경영 재시동

신 회장은 이날 회의를 마치고 일본으로 출국했다. 지난 5일 출소 이후 첫 해외 출장이다.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등 일본 롯데 주요 경영진을 만나 현안 보고를 받고, 한·일 롯데 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투자자와 금융권 인사도 만난 뒤 다음 달 중순쯤 귀국할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한·일 셔틀 경영'을 했다면, 신 회장은 세계 26개 롯데 진출국을 현장 지휘하는 글로벌 경영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