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언제쯤인가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라고 적힌 버스 광고를 처음 봤을 때 피식 웃음이 났다. 지극히도 당연한 짧은 두 문장으로 ‘치킨무죄’ ‘식자(食者)유죄’의 진리를 다시 한번 명쾌하게 짚어주다니. 광고 문안가에게 엄지라도 들어 보이고 싶었다.

말장난 같은 이 광고 카피는 매일 다이어트를 꿈꾸지만 바삭하게 튀겨낸 치킨의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수많은 ‘내일의 다이어터(dieter)’들에겐 따끔한 충고로 가장한 또 하나의 유혹이었으리라.

비만의 원죄를 치킨에서 ‘내 탓’으로 돌린 이 광고는 역설적이게도 치킨 배달이 늘어야 매출이 느는 한 배달앱 서비스 업체가 내놓은 것이다. 사실 얼마나 단순한 명제인가. 치킨이 무슨 죄겠나. 안 먹어도 될 시간에 먹고, 배가 불러도 먹은 것이 살로 가는 것을.

느닷없이 치킨과 찌는 살과의 상관 명제를 다룬 이 배달앱 광고가 떠오른 것은 가계대출 부실이다 뭐다 해서 주택담보대출 이슈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와서다. "주택담보대출은 과연 가계부채 증가의 원흉일까? 집값을 잡고 가계부채 부실을 해결하려면 담보 대출을 틀어 조여야만 할까?"

가계부채가 늘어난 데는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탓이 분명 있다. 또 집값이 빠른 속도로 오른 것은 실수요든 갭투자든 저금리 상황에서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투자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다. 그렇다고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 부실의 책임을 홀로 뒤집어쓰거나, 과열 집값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것은 마녀사냥에 가까운 책임 지우기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치킨을 먹어 살이 쪘을 수는 있지만, 살이 쪘다고 치킨을 시켜 먹은 탓만 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나.

사실 주택담보대출이야말로 서민이나 청년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현실적 ‘주거 사다리’다. 그런데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강화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까지 도입돼 담보대출 한도가 줄어드니, 집값이 하루가 멀다 하고 뜀박질하는 상황에서 집을 장만하기란 어지간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없는 경우라면 더 버거워졌다.

어쨌거나 주택담보대출을 조였지만 한쪽에선 담보대출 총량이 오히려 더 늘어 가계부채 부실 우려가 더 커졌다는 목소리가 연일 터져 나온다. 맞는 지적일까?

옳을 수도 있지만 틀린 기우일 수도 있다. 무턱대고 늘어난 것이 아니라 주택이라는 ‘확실한’ 담보를 기반으로 하는 대출이기에 주택담보대출이 늘었다고 가계부채 부실이 커진다고 여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담보물의 물가(가치) 상승에 따라 대출액이 늘어난 것까지 부실 우려가 커진 것으로 잡는 건 과한 면이 있다. 예컨대 4억원 대출이 있는 10억원짜리 아파트가 20억원으로 올라 8억원까지 대출이 됐다고 담보대출이 2배가 돼 부실 우려가 2배로 커졌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정부가 전부터 조여온 LTV∙DTI 기준에 따라 ‘안전하게’ 내준 대출이 아닌가.

주택담보대출 자체 문제가 아니라면 대출 제도를 운영하는 데서 해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대출 규제를 대출 수요층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듯싶다.

무주택자나 신혼부부 등에겐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넓혀 주기 위해 LTV∙DTI 등의 한도를 더 올려주고, 주택 보유자들에겐 주택 수에 따라 이들 대출 기준을 더 까다롭게 적용하는 탄력적인 방법이 있다면 적어도 주거 사다리가 사라졌다고 원망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을 어느 정도 구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컨대 담보대출 규제로 되레 늘어난 신용대출이 감소하고 편법 대출 문제도 줄어드는 부수 효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치킨 홀로 비만의 책임을 질 이유가 없는 것처럼, 주택담보대출 자체는 가계부채 부실과 집값 폭등에 대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지나친 절식이 영양을 파괴하고 오히려 다이어트에 해가 되는 것처럼, 지나친 대출 규제는 필요한 곳에 돈이 돌지 못하는 시장 왜곡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담보대출 건전성의 열쇠도 결국 정부가 쥐고 있는 셈인데, ‘네(시장) 탓’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